옥천사의 역사, 밝혀질 수 있을까?

등록 2020.03.26 11:43수정 2020.03.2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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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사 일대
옥천사 일대CPN문화재TV
 
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는 이 근방 사람들이 자주 찾는 부춘산이 있다. 그 부춘산의 중턱에는 옥녀봉(玉女峰)을 뒤편에 두고 정방향으로 옥천사(玉泉寺)라고 하는 작은 사찰이 있다.

옥천사의 옆에는 한국전쟁 및 월남전 참전용사와 전몰 군경 등 애국지사를 모신 서산시 충령각이 있으며, 법당, 범종각, 오층 석탑이 있고 야외에 입불이 있다.


이 옥천사는 현재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79년 편찬된 권상로의 <한국사찰전서>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창건 연대도 현대로 추정되지만, 이에 대한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왜냐면 법동인 인법당이 일제시대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옥천사 유물조사 현장
옥천사 유물조사 현장CPN문화재TV
 
 뜻밖에 이 옥천사의 이전 역사를 밝힐 수 있는 실마리가 최근에 발견되었다. 옥천사의 무구 주지 스님은 옥천사의 주변에서 나한상불두(羅漢像佛頭)와, 기와편 등의 유물들을 발견하고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셨다.

CPN문화재TV에서는 김성구 전 문화재위원(문화재청)에게 유물들에 대한 자문을 구하였다. 김성구 전 문화재위원은 주변을 조사하면서 추가적으로 토기편과 청자편 등의 유물을 확인했으며, 이것들은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유물들의 시기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하게 있으며, 삼국·통일신라 시기에는 이 곳이 산성이나 혹은 토성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김성구 위원은 밝혔다.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은 와편이었는데,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의 기와들이 다양하게 산포되어 있었다.
 
 나한상불두
나한상불두CPN문화재TV
 
특히, 사찰 부근에서 발견된 나한상불두의 경우에는 이곳이 고려시대부터 사찰의 기능을 하는 장소로서 쓰였다고 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으며, 추가적으로 불두가 발견될 경우에는 이곳이 사찰로 쓰였을 가능성이 확실해진다고 주장했다. 더불이 이러한 불두는 1기만 발견될 수 없다고 했으며, 추가적인 지표조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곳의 유물들의 시기와 나한상불두의 중요성, 그리고 산성이나 토성이었을 가능성을 미루어보아 옥천사와 그 주변은 지표조사를 함으로서 이 근방 유물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수집하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지 밝히는 것이 중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CPN문화재TV에도 실립니다.
#옥천사 #나한상불두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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