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5월 6일자 뎨국신문(제국신문)
독립기념관
주시경의 국문(한글) 사랑 정신은 치열하고 한결같았다. 지금부터 120여 년 전에 『제국신문』에 쓴 논설에서 그 정신의 일단을 살필 수 있겠다. 「논설」의 두 대목을 살펴본다.
전국 사람이 국문에 힘을 써서 연구하여 점점 발명하거더면 편리한 법이 세계 만국 글 중에 제일 긴요한 글이 될 것이거늘, 우리나라 사람들은 배우기 어렵고 알기도 어렵고 마음대로 말을 만들기 어려운 한문만 글로 알고, 배우기 쉽고 알기 쉽고 못할 말없이 하기 쉬운 국문은 글로 알지도 아니하고 여인들이나 배울 것이라고 하며 등한히 여기고 천하게 여겨서 무슨 문자로 치부(置簿)를 하든지 통신하는 일 같은 천만사를 넉넉지 못한 한문으로만 기록하고 쉬운 국문은 쓰지 아니할뿐더러, 또 여간 짐작하고 국문을 쓰는 사람들도 국문을 만든 이치와 말 만드는 데 고하자(高下字)와 경위를 분변치 아니하고 되는 대로 횡설수설하게 써서 남이 그 글을 보고도 알 수가 없이 만드는 어찌 개탄치 아니하리.
국문 만든 이치가 경홀(輕忽)하지도 아니하고 말 만드는 법도 기묘한 고로, 우리나라에서는 긴중(緊重)히 여기지 아니하되 외국 사람들은 그 글이 묘한 글이라 칭도(稱道)하며 점점 발명하고 연구하여 고하자(高下字)의 분간을 구별하여 서책을 만들고 신문을 만들어 아무쪼록 세상의 남녀노소 없이 다 국문을 달통하여 무식한 사람이 없도록 생각하거늘, 정작 본국 사람들은 시악 심상(恃惡尋常)하고 국문에 힘을 쓰지 아니하는 지라.
가령 동서양 사기(史記)라든지 성경현전(聖經賢典)이라든지 법률 규칙 같은 천만사를 모두 국문으로 번역하고 아무쪼록 국문을 연구하여 남이 알기 쉽도록 만들겠더면 사람마다 세계 형편도 알기 쉬울 것이요, 성경현전의 좋은 말과 좋은 행실을 보아서 모두 지식도 늘고 행실도 점잖아질 터이요, 내 나라 일과 남의 나라 일을 보아 분변하는 애국성(愛國性)도 생길 터이거늘,
한문으로 기록한 책만 보아야 하겠고 수십 년을 공부하여야 성공할는지 말는지 한 한문 공부만 하여야 될 줄만 아나니, 어느 겨를에 다른 것은 아니로되 국문을 등한히 여기고 힘쓰지 아니할 것이 아니기로 두어 마디 설명 하거니와 국문이 발달되는 날에야 우리 대한이 세계에 독립 부강국이 될 줄로 짐작하노라. (주석 3)
주석
3> 「논설」, 『제국신문』, 1900년 1월 10일치,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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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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