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 청원. 24일 오후 1시 53분 현재 181만9928명이 동의했다.
청와대국민청원 갈무리
인권의 관점에서 신상공개에 대해 반대한다는 말들이 논점 일탈로 느껴진다. 통상의 신상공개 요구가 법적 절차와 무관하게 대중적 공분에 의한 처벌과 복수를 원하는 것이라면, 작금의 신상공개 요구는 이론이나 언어 이전에 아래로부터 제기된, 강간문화에 대항하기 위한 사회 정책처럼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피의자들의 인권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대중적 증오의 발현이 아니라, 심각한 강간문화에 아파하고 분노하는 여성들이 선취해 제기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 점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데, 이 정책이 진지하게 상상되거나 정교한 언어로 논리화된 걸 (내 짧은 지식으로는) 별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강간문화'라고 지시되는 어떤 구조·관행·문화가 이 사회에 넓게 퍼져 여성들의 몸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 왔다는 사실 자체는 '익숙한' 일이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운동의 많은 부분은 바로 이에 대한 저항이었다.
특히 몇 년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강간문화 폭로는 온라인 공간에 기반하고 있었다. 가령 삼년상 치른 지도 오래된 '메갈'과 미러링이라든지, 소라넷 폐쇄 운동, 카카오톡에서 남성들이 여성들의 몸을 품평하는 문화 등 n번방이 크게 이슈화된 지금 돌이켜보면 이 모든 문제들이 다 이어져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특히 이런 강간문화들이 갈수록 '익명의 개인들'에 의해 온라인 세계의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스며들며 암약한다는 점에서 문제라 하겠다.
그러나 요 몇 년은 온라인 기반의 강간문화의 실체가 단순히 하나둘 드러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것을 드러내고 그것과 싸우면서 하나하나 바로잡고자 했던 것이 지난 몇 년이었고, 그 주체가 바로 지금 n번방에 분노하는 젊은 여성들이다. 말하자면 온라인 강간문화와 싸우는 데 경력과 경험치가 있는 현장 베테랑들이다. 그런 '베테랑'들이 지금 '26만 명의 신상공개'를 의제로 삼았다면, 일단 그 의미를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이를테면, 26만 명의 신상공개는 강간문화에 대한 '금융실명제'와 같은 방식이라고 느끼고 있다. 우선, 그간 강간문화라고 불러온 것이 26만 명이라는 명징한 숫자가 됐을 때, 즉 강간문화가 계량화돼 26만 명이라는 숫자로 나타났을 때, 까마득한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다들 알고는 있었겠지만 일종의 확인사살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저 26만 명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그 26만 명은 응달에서 활동하다 사람이 나타나면 흩어지기 바쁜 벌레들이 아니다. 사진과 영상을 빌미로 피해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이 문제를 취재하고자 나선 기자까지도 위협하면서 여성들의 저항을 봉쇄하려고 한다.
거기에 핵심 기제는 단연 '익명성'이다. 스스로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으므로 언어화하기도 까마득한 범죄(나는 여러 의미에서 아우슈비츠를 떠올렸고, 이건 정말 인륜에 반하는 범죄[crime against humanity]라고 불러야 마땅한 것 같다)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며, 동시에 익명성을 보호하기 위해 갖가지 폭력을 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 26만 명에 대해서, 그리고 온라인 강간문화에 대하여 '금융실명제'처럼 그 이름을 다 까발려 버리면 어떨까.
두 가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