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전국 이동제한령이 발효된 첫날인 지난 1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상징인 콜로세움 주변에 인적이 드문 모습이다.
연합뉴스
뉴스를 보니 이탈리아에서는 확진자가 3만 명이 넘었고 사망자 수도 2천 명 선을 넘었습니다.
며칠 안에 사망자 수가 중국을 앞지르고, 결국 확진자 수도 더 많아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이탈리아 정부가 방역을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진 않았습니다. 그냥 손을 놓고 있다가 사태가 긴박해지자 어느 지역을 봉쇄한다 뭐다 하다가 이젠 전 국토를 봉쇄상태로 묶어놓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의 정부 대응은 비단 이탈리아뿐 아니라 스페인이나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도 똑같습니다. 심지어 미국조차 이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일본이 아직은 확진자 수가 그리 많지 않다고 버티는 모습이지만, 거기도 이들의 뒤를 따를 날이 머지않았다고 봅니다.
만약 우리 정부가 이렇게 대응해 전국이 봉쇄상태에 들어가 가게와 식당이 모두 문을 닫고 사람들이 거리에서 사라졌다고 해봅시다. 보수 언론과 보수 야당은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탄핵해야 마땅하다고 목청을 높이지 않았겠습니까? 단지 탄핵을 해야 한다는 데 그치지 않고 대통령을 위시한 책임자를 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을 거라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느 지역을 봉쇄하지도 않고 그 어떤 사람에게 강압적 조처를 하지 않고서도 이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 과정의 주역 중 하나였던 정부에게 수고했다고 위로를 해주지는 못할망정 "무능의 극치"니 뭐니 하는 말로 상처를 주는 것은 몰상식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정부의 대응이 만점은 아니었지만 다른 나라 정부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좋은 점수를 주어야 마땅한 일입니다.
해외에서 우리 정부의 대응에 대한 칭찬이 이어지자 보수세력의 프레임이 묘하게 변화하기 시작하더군요. 처음에는 정부가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순전히 민간부문의 헌신과 노력 덕분이라는 논리로 물타기를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며칠 동안 보수언론의 기사와 사설은 모두 이런 논조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가장 최근에는 우리나라가 방역 모범국이 아니라는 것으로 교묘하게 프레임이 바뀌더군요. 여러분도 읽으셨을지 모르지만,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코로나19 관련 최근 기사를 퍼나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기사에 따르면 방역 모범국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대만, 홍콩, 싱가포르지 한국이 아니라는 겁니다.
최근 해외 언론이 한국 관련 기사를 많이 싣고 있는 편인데, 그중에는 한국을 칭찬하는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타임>도 해외언론 중 하나일 뿐인데, 사람들이 유독 그 기사만 퍼 나르는 저의가 무언가 의심이 되더군요. 오늘 아침 한 보수언론의 사설을 보고는 그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 사설의 제목은 "방역 모범은 대만과 싱가포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타임>의 기사도 그렇고 이 사설도 그렇지만, 이 말에 틀림이 있는 건 결코 아닙니다. 통계수치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듯, 대만, 싱가포르, 홍콩의 상황이 우리보다 훨씬 더 좋습니다. 이처럼 뻔한 사실을 구태여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 정부에게 공이 돌아가는 것을 막아보자는 저의 아니겠습니까? 무슨 수를 쓰든 정부에게 공이 돌아가는 것만은 막아보자는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안쓰럽기까지 하네요.
마지막 승리를 거둘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