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대구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 비상대책본부 앞에 시민들이 보낸 다양한 응원메시지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조금씩 유행하기 시작했던 초창기만 해도 불안감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국내에서 확진자가 조금씩 발견되고 있었지만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거기에 확진자들은 내가 거주하거나 주로 생활하는 지역과는 비교적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 이런저런 뉴스가 전달되던 주말 나는 번화가에서 영화를 보고 밥을 먹었는데 극장은 사람들로 만원이었고 식당의 점원들은 아직 마스크를 끼기 전이었다.
하지만 낙관적인 전망과 달리 감염자 수는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고 점차 나의 생활권 부근에서도 등장했다. 급기야 내가 이용하는 피트니스 센터에 확진자가 방문했고 센터가 2주간 폐쇄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혼란한 시국에는 일부러라도 평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다짐했지만 마음의 동요는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일하던 사무실도 재택근무를 결정했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부근에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이 방문했다는 재난알림 문자가 울렸다. 근처의 망원시장은 확진자가 방문한 이후 이틀간 폐쇄를 결정했다.
점차 나 또한 바이러스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게 되었고 그러자 두려워졌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이 사무실에 바이러스를 전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우리 사무실은 총 네 개의 단체가 함께 사용하고 있다. 이는 바이러스가 한번 퍼지면 네 개의 단체가 한 순간에 활동을 중지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그런 맥락을 떠나서라도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내가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재택근무까지 하는 건 너무 유난이 아닐까'라고 생각한 지 딱 한 달만의 상황이었다.
'전파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결국 약 2주 정도의 재택근무 기간을 지나 회의를 할 겸, 다들 안녕하게 잘 지내는지 확인할 겸, 나와 동료들이 다시 모였다. 우리는 지금의 이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의 집에 떨어져 드는 생각과 감정을 속으로만 삭이던 우리에게 너무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전파자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나만 가진 것이 아니었다. 재택근무에 동의했던 동료들은 '내가 사는 동네도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안전한 곳이 아닌데, 괜히 사무실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길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낯선 바이러스를 향한 두려움 앞에서도 다른 사람을 먼저 걱정하는 그들의 모습이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지금까지 공유된 정보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기저질환을 이미 가지고 있거나 면역력이 낮지 않은 이상 감염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가능성은 극히 낮으니 말이다. 감염된 사람 중 80%가 경미한 증상을 앓았고 비교적 젊은 세대의 경우 증세가 거의 없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지금의 상황이 우리 이타심을 모조리 잃을 만큼 극단적이지 않다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과연 상황이 지금보다 더 나쁘고 더욱 심각한 재난이 닥쳐왔다고 해도 우리가 지금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공포와 혼란 속에서 오로지 각자도생만을 생각하는 이들이 되었을까?
'재난'에 대한 통념과 다른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