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자고 가요' 겉그림
책방심다
글을 못 쓰는 사람은 없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말을 하거든요. 우리가 하는 말을 옮기면 모두 글이에요. 말을 더듬는다면 글을 더듬더듬 옮기면 되어요. 시골말을 쓴다면 시골말을 고스란히 옮기면 됩니다.
말하는 그대로 글을 옮길 적에는 멋이 안 난다고 여기는 분이 많습니다만, 말결하고 달리 꾸미는 글결이 되면 글치레가 되고, 글치레란 겉치레로 잇닿습니다. 생각해 봐요. 그럴듯해 보이려고 '우리 말씨가 아닌 다른 말씨'를 쓸 적에 즐거운가요? 뭔가 번듯하거나 똑똑해 보이도록 말씨를 고치면, '우리 말씨 아닌 다른 말씨'로 꾸민 그런 말 한 마디가 우리 마음에 사랑으로 피어나는가요? 남이 멋지게 하는 말씨를 흉내내지 말고, 우리 마음을 즐겁게 드러내는 말씨를 가꾸면 됩니다.
밭을 가꾸듯 말글을 가꾸지요. 살림을 가꾸듯 말결이며 글결을 가꿉니다. 마음을 가꾸듯 생각을 가꾸어 말글도 나란히 가꾸고요.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쓰면 됩니다. 어른은 어른답게 쓰면 됩니다. 다시 말해,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말하면서 이 말을 글로 옮기면 됩니다. 어른은 어른답게 말하면서 이 말을 글로 옮기면 되어요.
우리 집 마당에 감나무가 있다
할머니랑 엄마가
감나무 팔을 꺾어도
감나무가 살아남았다
나무는 대단해. (감나무-이준상/14쪽)
밤은 따가워.
밤은 맛있어.
밤은 왜
잠바를 두 개 입을까? (밤-서지현/33쪽)
글은 삶으로 쓰면 됩니다. 우리 삶을 그대로 쓰면 되어요. 글은 살림으로 쓰면 됩니다. 밥살림·옷살림·집살림을 고스란히 쓰면 됩니다. 글은 사랑으로 쓰면 되지요. 스스로 사랑하는 하루를 오롯이, 스스로 사랑하는 이웃이며 동무이며 집안이며 마을이며 숲이며 온누리이며 마음을 옹글게 쓰면 되지요.
조금 더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글을 숲으로 쓸 만합니다. 그리고 바다가 되고 하늘이 되며 구름이 되는 넋으로 글을 쓸 만해요. 제비가 되고 제비꽃이 되고, 소나무가 되고 잣나무가 되어서 글을 쓸 만합니다. 조약돌이 되고 모래가 되어 글을 쓸 만하고요.
여덟 살 어린이가 손수 쓰고 그린 이야기를 갈무리한 <나랑 자고 가요>(광양동초 1학년 1반 어린이·김영숙 엮음, 심다 2020)를 읽으면서 여러 마음을 느낍니다. 아이들이 바라본 아이 모습을 비롯해서, 아이를 둘러싼 어른이나 어버이나 마을이나 삶터 모습을 읽습니다.
진흙은 밟으면 신발이 더러워져.
비 오는 날은 진흙이 돼.
비가 안 오면 다시 흙이 돼. (진흙-박종호/90쪽)
무지개야,
너는 해님이 좋아?
아니면 비가 좋아?
꼭 말해 줘야 돼.
나는 해님이 좋아. (무지개-조서현/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