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부리가 달린 마스크는 오염된 공기를 차단하는 방독면이었고, 사진에 나오지는 않지만 지팡이는 환자를 직접 접촉하지 않고 진료하기 위한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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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8년 3월 초, 흑사병이 터지자 여러 나라에서는 흑사병에 대응하기 위해 의사를 직접 고용했는데 이들을 '흑사병 의사'라고 불렀다. 우리가 아는 기괴한 흑사병 의사는 일종의 방호복을 착용한 모습이다. 이 복장도 17세기에서야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했다. 14세기 의사들은 아무 보호 장비도 없이 환자를 돌봐야 했다.
지식과 기술의 수준 차이는 있지만 의료진의 사명감과 헌신은 오늘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들의 노력에는 직접적인 환자 치료도 있었지만 치료법 개발을 위한 집단 지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런 노력에 힘입어 의학은 신학과 철학을 벗어나 과학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양보다 질을 선택한 피렌체의 의료·제약 길드
1338년 피렌체의 의료·제약 길드(상공업자들이 만든 상호 부조적인 동업 조합)에는 내과의와 외과의가 60여 명, 약종상이 100여 명 가입되어 있었다. 하지만 1348년 4월에서 9월 사이에만 인구의 60%가 흑사병으로 사망하는 와중에 상당수의 구성원이 희생되었다.
길드원이 부족해진 다른 길드들은 인원수를 채우려고 가입조건을 완화했다. 하지만 의료·제약 길드는 이와 반대로 오히려 가입조건을 더 강화한다. 이런 조치는 길드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흑사병으로 의료 수요가 폭증한 상황에서 무자격자의 무분별한 진료나 검증되지 않은 약과 치료법의 난립을 막기 위한 것이 더 큰 이유였다.
그리고 가입조건을 강화했지만 의사로서 실력이 검증되었다면 여성도 길드에 가입할 수 있었다. 물론 매우 제한적인 시기(1353-1408)에 그 수도 4명에 불과했지만, 다른 곳과 달리 피렌체에서만 여성 의사를 찾아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