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쓰게 된 아들아들은 이번 코로나로 마스크를 참을성있게 쓸 수 있게 되었다
남여원
우리집 남매도 마찬가지다. 두 녀석 모두 새로운 곳에 입학하게 되었다. 딸은 유치원에, 아들은 가정어린이집에서 민간어린이집으로 가게 된다. 입학하고 등하원을 반복하며 적응기간을 거치게 될 것이다. 3월이 오고 볕이 따뜻해졌지만 이 일은 여전히 현재가 아닌 미래에 있을 일이다. 엄마인 나는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 얼굴을 아직 본 적이 없다.
코로나19는 일상을 바꿨다. 공기가 아무리 좋아도 마스크를 하고 다녀야 한다. 마스크 없이는 어느 곳에서든 눈치를 보게 된다. 사람들이 일정 이상 모이는 곳이라면 필수, 엘리베이터에서도 마스크를 해야 한다.
마스크가 귀해져서 줄을 서서 사게 될 줄은 몰랐다. 그나마 나는 다행이다. 산모일 때 잔뜩 사두고 다 사용하지 못했던 마스크가 아직 집에 남아 있었다. 아이들도 황사 마스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모셔둔 게 요즘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 몰랐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뛰노는 아이들, 삼삼오오 모여 있는 동네 엄마들, 산책을 나오는 어르신의 모습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아파트 안에 소박하게 열리는 요일장도 적막하다. 마스크를 해야 외출을 할 수 있게 된 일상처럼 하나에서 열까지 달라진 것들이 많다.
주말이면 어디든 나갈 곳이 사라졌다
주말이면 어디든 나갔다. 집에 있는 것보다 가까운 곳이라도 가서 소소하게 요기할 거리를 사오거나 그저 별일없이 공원에 나가 걷다 들어오기도 했다. 꼭 거창하지 않더라도 서로에게 기분 전환을 주는 셈이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공원에 나가 걷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주말이 와도 외출을 하지 않았다. 아니, 아이들과 나는 어제도 오늘도 바깥을 본 일이 없으니 오늘이 월화수목금토일 무슨 날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집에 있으니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들, 정리되지 않은 공간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한참 어지르길 좋아하는 물건이 한참 차고 넘칠 유아기를 보내고 있다. 살림 못하는 엄마 사람이 사는 우리집의 물건들은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누군가가 보면 딱 기절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