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구매시 '날짜 확인하고 신분증 챙기세요'정부가 주 1회 1인당 2매 구매 제한과 요일별 구매 5부제 적용 등 마스크 수급 안정화 대책을 내놓은 가운데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약국에서 약사가 신분증을 확인한 후 마스크를 판매하고 있다.
유성호
# 수요일
아무도 단 한 장도 양보하지 않았다
약국 앞에 줄이 꽤 길게 나 있었다.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반겼다. 28번까지의 사람들은 뒷사람들을 빨리 돌려보내라고 아우성, 29번부터는 5장씩 주지 말고 다 같이 나누자고 아우성. 앞에 사람들에게 수량을 나누면 어떻겠냐고 말했으나 먹히지 않았다. 빨리 28번에서 끊어 버리라고 성화였다.
공적 마스크에 대한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1인 5매 이하'였다. 원래 취지는 한 사람이 많이 사지 못하게 하려는 건데 지금처럼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5매도 많은 양이다. '1인 5매까지 구입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무심코 적어서 공지한 것이 화근이었다.
5매까지 구입할 수 있지만 사람 수가 많으면 서로 이해하고 나눠가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대와 달리 분위기가 살벌했다. 모두 몇 명인지 몇 장씩 나누면 될지 다시 수를 세기 시작했으나 사람들의 아우성 때문에 제대로 셀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수를 세기 시작하자 줄이 계속 늘어났다.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공평하게 나누고 싶었던 마음을 접어야 했다.
공지한 대로 5매까지 구입 가능합니다. 앞에 분들께 부탁드려요. 공적마스크 소량이지만 계속 들어오고 있으니 조금씩 양보해주세요.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단 한 장도 양보하지 않았다. 29번 아주머니, 30번 31번 내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특히 안타까웠다. 29번 이후의 사람들은 억울해서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새벽부터 나왔는데 그냥 못 간다, 번호표를 달라, 왜 다섯 장씩 줬냐, 또 어떤 분은 내가 아침 9시에 오면 살 수 있다고 해서 늦게 왔다고 내 탓을 하기도 했다(우린 분명 아홉시부터 판매하지만 일찍들 나오실 거라고 말했는데). 이른 아침 고생 하셨는데 마스크가 부족해서 죄송하다고 쌍화탕을 드렸더니 이런 건 필요 없다, 마스크를 달라 고함을 쳤다.(그러나 나중에 다들 가져갔다).
낯익은 내 또래의 여성 두 분(나중에 생각해보니 월요일에 번호표 달라고 했던 분들 같다), 다른 약국은 2장, 3장씩 파는데 다섯 장씩 팔면 어떻게 하냐고 마지막까지 항의를 하셨다.
그럼 내일부터는 3장씩 판매할까요? 했더니 갑자기 표정을 확 바꾸어 오늘 5장 팔았는데 내일은 왜 3장이냐고. 이 분들이 내게 29번 이후에 나이 든 어르신이 많으니 28번에서 자르면 안 된다고 주장했었는데, 이렇게 얼굴 바꾸는 걸 보니 정말 나이 드신 분들을 배려하는 마음이었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아침의 소동은 낮까지 이어졌다. 점심시간에는 마스크를 못 산 아주머니가 전화로 분풀이를 했다. 전에는 번호표를 주고 오늘은 왜 안주냐고, 아침 9시에 파는 건 누가 정한 거냐고.
처음에는 들어주고 미안하다고 했는데 말이 통하지 않았다. 새벽부터 나가 줄 섰는데 마스크 한 장을 못 샀다고 하도 그래서 그럼 제가 다른 방식으로라도 마음을 풀어드리면 좋겠다 했더니 다른 것 다 소용 없고 오로지 마스크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럼 제가 개인적으로라도 마스크를 구해보겠다 했더니 나는 그런 마스크는 필요 없고 공정한(!) 마스크를 원한다고. 공적 마스크인데 왜 네 맘대로 번호표를 줬다 안줬다 하냐고 트집을 잡는데 할 말이 없었다.
약국을 통해 공적 마스크를 공급한다고 했을 때 무척 반가웠다. 약국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어려운 시기에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맡아 하면 뿌듯할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 발표가 먼저 났고 마스크를 살 수 있다는 기대로 약국을 찾은 사람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마스크가 입고 돼도 수량이 너무 적었다. 적은 수량을 나누려니 참 곤란했다. 마스크를 사지 못한 사람들은 공정하지 않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단 한 장도 우리 자신을 위해 쓰지 않으며 '공정'하려고 애를 썼지만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공정한가. '아침 9시, 선착순'에서 배제되는 사람들도 많았다. 오후에 출근하는 보안 경비업체 직원, 투석하는 어머니를 위해 마스크를 사고 싶지만 새벽 일찍 나가야 하는 일용직 노동자, 몸이 불편하여 기동력이 떨어지는 사람, 기저질환이 있어 마스크는 더욱 절실하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나설 수 없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