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장미>마야와 로사가 눈물범벅으로 대화하며 서로를 새로 알게 된다.
김화숙
로사: 정말? 내가 배신자라고? 그렇게 생각해? 내가 식구들 먹여살렸는데? 엄마랑 너한테 돈 보내줬는데? 그렇게 생각해? 네 배를 채워줬는데 어떻게 번 돈인지 생각해본 적 있어? 내가 고향 떠난 게 몇 살 때야? 어린애 때였어. 아무도 신경 안 쓰지. 배부르게 해주면 그만이니까. 내가 뭘 했는지 알아? 몸을 팔았어. 창녀였다고.
마야: 몰랐어.
로사: 네 언니는 창녀였어. 식구들 굶어죽지 않게 하려고 5년 동안 매일 밤마다 로사! 남자들 물건을 빨아. 어서!
마야: 난 전혀 몰랐어!
로사: 어서 해! 식구들이 쫄쫄 굶고 있잖아. 어서 핥아 어서 해 어서. 더럽지? 토할 것 같니? 어때? 알려고 하지 않았어. 아버지가 집 나가고 누가 먹여 살려? 누가 해. 로사가 나가 몸 팔아야지.
마야: 몰랐어 언니.
로사: 흑인 백인 기름에 전 놈 똥내 나는 놈 세상 남자를 다 붙여줘야지. 남편이 아프니 또 그 짓 해야지. 누구 차례야? 또 로사야. 멍청한 로사가 항상 또 해야 돼. 모두를 먹여 살리게 또 그 짓 해야지. 난 모두가 미워! 평생을 참고 살았어. 내 속에 다 담아두고 말이야. 어때? 이리 와!
마야: 난 몰랐어.
로사: 잘 들어. 네 일자리 어떻게 구한 줄 알아? 여기서 일하고 싶어 했지? 뭐든 할 테니 일 좀 구해 줘. 어떻게 구한 줄 알아? 그래 페레즈랑 잤어.
마야: 말도 안 돼.
로사: 같이 잤다고. 널 위해 말이야! 난 지쳤어! 남편이 아파서 아버지가 집 나가서 네가 일자리 원해서 나는 몸을 팔아.
마야: 난 몰랐어 로사.
로사: 몰랐어? 장님이야?
그랬다. 마야가 자유롭고 생기발랄한 말괄량이 소녀라면 로사는 일찌감치 가족을 먹여살려야 한 큰 딸이다. 불법 이민자로 들어오던 날 성폭행의 희생자가 될 뻔한 상황을 빠져나오는 장면은 마야의 지혜와 용기를 잘 보여줬다. 언니 도움을 받아 빌딩 청소 일자리를 얻어 일하며 노조에 참여한 마야. 가장으로서 밥벌이에 전전긍긍하느라 마야와 동료들을 '배신한' 로사. 자매는 서로를 다시 알게 된다.
"#EachforEqual" 3.8세계 여성의 날에
"나는 몰랐어."
"몰랐어? 장님이야?"
<빵과 장미>의 시선은 깊고 따뜻하다. 이데올로기적 이분법을 부끄럽게 하고 인간을 넓게 품어낸다. 마야의 입장, 로사의 마음, 그리고 감독의 시선이 담긴 대사다. 영화가 던지고 싶은 질문이지 싶다.
예수가 생각나게 하는 켄 로치라면 과장일까. 당대의 종교권력과 부딪치며 예수가 했던 비유 하나가 떠오른다.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포도원에 나가 일하라 한다. "예"라고 한 뒤 행동은 안 하는 큰아들과 "싫어요"라고 하고 나중에 일하는 둘째 아들.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한 거냐? 예수의 질문에 둘째 아들이라고 사람들이 답한다. 이에 예수가 일갈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하나님 나라'와 '창녀'는 예수 정신을 이해하는 열쇳말이다. 로사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면 예수의 하나님 나라가 보인다. 마야는 로사를 몰랐다. 로사가 왜 그런 선택과 행동을 하는지. 이 사회가 로사를 어떻게 내몰았는지. 가족도 사회도 회사도 로사를 몰랐다. 알려고 하지 않았다.
용감하고 똑똑하게 노조에 가입한 마야에 비해 로사는 '답답하고 무지해' 보인다. 로사는 '배신자' 같았다. 조금 더 나가면 '계몽의 대상'이요 '진보의 걸림돌'이라 할지도 모른다. 마야는 로사에게 화가 나 있었다. 같은 여성노동자들이지만 조금씩 또 다른 입장이 있는 거다. 이분법은 얼마나 허망한가. 지식은 늘 부분적이고 시야엔 사각지대가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