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일본인 거류지. 일본 영사관과 일장기가 보인다. (로제티, "COREA E COREANI", 1905)
"COREA E COREANI"
'은둔 왕국'의 관문을 이미 일본이 점령했구나 하는 느낌이 스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오. 우리는 문득 불안을 느꼈소. 자칫하면 미쓰비시 사무실이나 영사관에서 우리를 제지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오.
우리는 잽싸게 방향을 틀어 왼편의 해안 길로 접어들었소. 왜관을 막 벗어났다 싶을 때 앗, 이건 또 뭔가. 돌연히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우리를 에워싸지 않겠소? 이 많은 사람들이 금세 어디에서 쏟아져 나온 것일까? 그동안 어디에선가 우리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던 것일까? 아마 그랬던 것 같소. 희한하게도 그들은 모두 흰옷을 입고 있었소. 흰옷에 반사되는 맑은 햇살에 눈이 부셨소.
놀라움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군중의 눈빛을 받으며 나는 본능적으로 지금 이게 위험한 상황인가 아닌가를 가늠해 보았소. 그러나 그들의 눈동자나 표정에서 적의 같은 건 느낄 수 없었소.
나는 한국어로 말을 건네 볼까 하고 독학으로 배웠던 몇 마디 단어를 떠올려 보았으나 정말이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소. 하는 수 없이, '곤니치와, 오하요' 하고 일본어로 말을 붙여 보았소. 여기저기서 응답해 왔소.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적지 않더군요.
일본어 구사자와 우리는 직접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그들이 중간에서 다른 조선인과의 대화를 통역해 주기도 했소. 말문이 터지자 분위기가 갑자기 생기로 부풀어 올랐소. 조선인들은 질문이 너무 많았소. 별의별 것을 다 물어와 실소를 터뜨리기도 했다오. 어디서 왔느냐, 어느 나라 사람이냐 같은 건 기본이고 덩치가 왜 이리 크냐, 뭘 먹고 사느냐, 살 속에는 피가 흐르느냐, 눈이 파란데 잠은 어떻게 자느냐, 잠을 자기는 하느냐…
나는 고대 왕국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소. 조선인들은 구김살이 없고 지적 호기심이 유별났소. 하지만 우리는 낭만적 여행이나 문화인류학적 조사를 하기 위해 여기 온 게 아니라, 미국의 이익에 복무하러 온 것임을 잊지 않았소.
우리는 매의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소. 해안에 배를 대고 낚시를 하고 있는 중년 남자가 눈에 들어왔소. 그에게로 다가갔소. 우리 뒤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지남철처럼 따라오고 있었소.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조선인들은 자신들이 마치 통역관으로 임명받은 것처럼 우리를 밀착한 채 따라오더군요.
우리는 어부에게 "배로 저쪽 마을까지 좀 데려다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소. 그때 우리가 가리킨 곳은 왼쪽 아래 방향으로 내항(內港) 건너의 제법 큰 해안 마을이었소. 일본어를 잘하는 어떤 조선인이 그 마을을 '셰투(Shetu)'라고 하더군요. 그게 일본식 이름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소. 지금은 그 마을을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 어떻게 변했는지.
얼굴이 검게 그은 어부가 좀 당황한 기색으로 엉거주춤 일어섰소. 그가 우리를 애매하게 바라보며 말했소. "배가 이렇게 누추하지만 그래도 좋다면…" 우리는 일본어를 잘하는 두 조선인을 초청해 낚싯배에 동승시켰소. 그렇게 되고 보니, 우리 그룹은 미국인 3명, 일본인 1명에, 조선인 2명으로 총 6명이 됐소. 세 나라 출신으로 구성된 것이니 어엿한 다국적 팀이 한 배를 탄 것이 아니겠소?
예상치 못한 난관
귀국 후 우리의 보고서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간단히 기록했다오.
"우리는 증기선 회사 사무실 바로 앞에 있는 돌로 둘러친 선창 안에서 상륙했다. 우리는 거기에서 확 왼쪽으로 길을 꺾어 저 아래 포구 방향을 향해 일본인거류지를 지나갔다. 거기에 이르자 굉장히 많은 조선인들이 우리 주위에 모여들었다. 호기심을 쏟아내며 그들은 우리의 모습과 옷차림을 뜯어보았다. 그리고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그들은 악의가 없고 선량했다(harmless and good-natured). 해변에 낚시꾼 한 명이 보여서 우리는 그에게 우리를 배에 태워서 내포(內浦) 가로질러 남서 방향에 있는 '셰투(Shetu)' 마을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일본어를 할 수 있는 두 명의 조선인을 통역으로 동승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