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읍과 도개면을 잇는 '일선교'. 다리에 새긴 석판 글씨는 박정희의 친필이다(2004년).
박도
일선교
"오래간만에 고향 땅을 찾아서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되니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그동안 고향에 계신 여러분들이 나에 대해서 항시 음으로 양으로 여러 가지 도와주시고, 성원해 주신 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사랑합니다. 자기의 고향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누구도 다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내가 이 고장에서 태어나고, 이 고장에서 잔뼈가 굵었고, 또 우리의 조상들의 뼈가 이 고장에 묻혀있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객지에 가서 오래 산다 해도, 또는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는다 해도 어릴 때 자라난 고향산천은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중략)
이번에 일선교 준공식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 준공식에는 꼭 내가 참석해서 고향에 계신 여러분들을 한번 뵈어야 되겠다, 이렇게 오래전부터 벼르고 있었습니다." - 경북 선산군 일선교 준공식 때 박정희 대통령 치사(1967. 3. 30.)
일선교는 선산읍 생곡리와 도개면 도개리를 잇는 교량으로, 낙동강 동부지방과 서부지방을 연결시켰다. 이 다리가 없었을 때는 도개나루에서 나룻배로 건너다녔다. 나도 어린 시절 어느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도개나루를 건너 친척집에 갔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곳에 다리가 세워지는 일은 이 지방 사람들의 숙원사업이었다. 그 꿈같은 일이 5.16 이후에 추진돼 준공됐다. 그날 건설부장관, 경북도지사와 마을 노인과 함께 준공 테이프를 끊은 박정희 대통령의 마음은 어땠을까.
1936년 8월, 대구사범 재학시절, 박정희는 학생의 신분으로 장가를 가고자 이 도개나루를 건너갔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1967년 3월 30일에 스스로 다리 준공 테이프를 끊을 줄이야.
일선교 준공식 날. 일선교 이쪽 저쪽인 도개마을과 생곡마을사람은 죄다 일선교 개통식장에 나와 농악대의 신명 속에 동네잔치를 벌이며 한바탕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다만 그 잔치마당에 단 한 집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침통하게 하루를 보냈다는 후문이다. 바로 처가 김씨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