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문화원 시민기록관에는 이천에 관한 다양한 기록물이 보존돼 있다.
김희정
이동준 사무국장이 지역에 천착한 것은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철학과 졸업 후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여러 번 불합격의 고배를 마셨고 이어 강원도 철암에 있는 탄광소에 지원했으나 면접에서마저 낙방한 그의 인생에 모처럼 햇볕 드는 기간이 있었는데 이십대 후반 서울에 있는 대기업에서 근무할 때였다.
그곳에서 그가 매달린 주제가 현지화였다. 대기업들이 한창 해외로 지사, 공장을 세우며 세계화 전략을 추구하던 시기에 그는 반대로 경영층에 현지화전략을 들이밀었다. 그 나라, 그 지역에 들어가면 그 지사, 공장은 현지의 기업이 되어야 하고 사장도 현지인 사장으로, 금융과 원자재도 현지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 대기업에 7년 동안 다니다가 그만두고 서울 성수동에서 외국인노동자와 생활하며 외국인노동자들이 일하는 3D업종에서 7~8가지 일을 했습니다. 철학, 다문화, 환경, 복지,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거쳐 현재 이천문화원에서 8년째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남다른 이력이 문화원에서의 활동에 영향을 줬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제 인생의 십대 때 서울 변두리의 잿빛도시, 이십대 때 보았던 강원도 철암의 흑빛도시, 청년시절 무전여행에서 만난 여수항의 시끌벅적한 수산시장, 그리고 삼십대 때 불시에 찾아온 사고와 사이렌소리, 그런 좌절의 순간들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문화 속에 다 녹아 들어가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돌아보니 그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지금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분야의 일을 경험하면서 혼란스러웠던 생각이 점차 윤곽이 잡히는 것 같아요. 그게 뭐냐 하면 '환경운동은 문화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화로 완성된다는 말은 앞으로 겪어야 할 기후변화에 대응할 단단한 삶의 태세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머지않아 빈번하게 찾아올 기후변화와 환경의 역습에 대비하려면 우리는 좀 더 유연하고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해요.
이것은 얼핏 문화와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모든 게 밀접하게 연결돼 있거든요. 문화는 새로운 삶의 양식이기에 옛문화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니까요. 또 하나는 '복지는 교육으로 시작해서 문화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현세대에 쏟아 붓는 복지는 이 이상 지탱될 수 없는 시기가 곧 올 겁니다. 자녀들에게, 미래세대에 투자해야 희망이 있습니다. 교육복지가 중요한 까닭을 깊이 숙고해봐야 합니다."
- 철학자로서는 어떻습니까?
"저는 철학에 관한 전문지식인, 즉 '철학자(philosopher. 필로소퍼)'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아니 평생 스스로에게 '나는 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불현듯 '필로소피러'(philosophirer)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칸트가 말하길, '철학은 명사가 아니고 동사(philosophiren)가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요, 철학은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지 학문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철학을 가르치는 전문지식인보다는 '철학하는 삶을 사는 사람', 바로 '필로소피러'야말로 제가 추구했던 것입니다. 이 용어를 만들면서 스스로 다짐한 게 있습니다. '앞으로 내가 이천에서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철학(哲學)을 하는 게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고 철학을 일상에서 실천하면서 변화를 만들어보자' 그런 다짐입니다."
이동준 사무국장이 인터뷰에서 초지일관 말하는 것이 있었다. '질문과 지역'이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찾은 답을 실천에 옮기고 있음도 엿보였다. 그리고 거센 파도에 표류해도 부서지지 않고 의연하게 가는 그의 항해는 한 방향으로 흘렀다.
그것은 어쩌면 그가 어둠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헤맬 때 빛과 구원으로 다가와 생의 목적을 알게 해준,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세상을 변화시킨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 연설문 중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가 떠오른다. '국가'에 내가 사는 지역, 마을 이름을 넣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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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가 살아야 지역이 산다, 지역에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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