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안교비전각(사진=CPN문화유산TV 심연홍기자)
심연홍
홍예는 정교하게 다듬은 장대석(長臺石)을 사용하여 반원형을 이루도록 하였으며, 역시 장대석을 깔아 위쪽 노면을 형성했다. 전체적으로 축조 양식이 매우 정교한 만안교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로 평가된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楊洲)에서 수원 화산으로 옮긴 후 자주 참배길에 올랐다. 당시 서울에서 수원으로 가는 길은 용산에서 노량진으로 한강을 건너고 동작을 거쳐 과천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가는 길에는 교량이 많을 뿐 아니라 남태령이라는 고갯길이 있어서 길을 닦고 행차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게다가 사도세자의 죽음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김상노(金尙魯)의 형 김양모의 묘를 지나게 되어 있어, 정조는 이것이 불쾌하여 시흥길로 바꾸도록 하였다.
시흥로가 개설된 것은 1794(정조18년)년이다. 첫해에는 임시로 나무다리를 놓아 사용하였는데, 왕의 행차 시마다 다리를 놓았다 헐었다 하는 번거로움이 컸다. 그러므로 수원으로 갈 수 있는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강을 건넌 다음, 시흥, 안양을 거쳐서 수원으로 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