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협-롯데재단 독립유공자후손장학사업 심사위원 간담회(왼쪽부터 심사위원 원희복, 롯데장학재단 사무총장 소대봉, 허성관 이사장, 김병기, 김삼웅, 박도, 김진 심사위원) 장면1.
민화협
보은의 만남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다. 그 시대 보통사람들은 해외나들이를 감히 꿈꾸지 못했다. 그 당시 베스트셀러는 김찬삼의 <세계여행>이라는 책으로, 사람들은 그 책을 보면서 마냥 해외여행을 동경했다. 그런 가운데 일부 어머니들은 똑똑한 딸을 둔 탓으로, 그 무렵 해외나들이를 했다. 그래서 생겨난 그 당시 유행어는 "딸을 잘 둬야 비행기를 탄다"는 말이었다.
나는 요즘 제자를 잘 둔 탓인지 귀한 여행도 하고, 이런저런 일로 말년을 바쁘게 지내고 있다. 이태 전에는 시민기자로 금강산 남북민화협 연대모임 취재로 금단의 선을 넘어 금강산을 다녀왔다. 지난해에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희생자 추도제로 일본 교토와 도쿄의 현장 답사 취재도 했다.
2020년 2월 19일 민화협–롯데장학재단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사업 2차 심사위원회 모임이 서울시청 옆 달개비 밥집에서 있었다. 이날은 처음으로 롯데장학재단 허성관 이사장과 소대봉 사무국장이 참석했다. 나는 '허성관' 이사장 존함이 기억에 뚜렷하다. 2003년 11월 백범암살배후진상규명 차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방문 모금 활동을 벌일 때다. 당시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은 성금 10만 원을 보내주신 적이 있었다.
그때 1천여 분이 십시일반으로 1만~100만 원을 보내주셨는데, 특별히 그분을 기억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그 모금은 우발적으로 일어났다. 그래서 행안부에 사전 신고를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냥 진행했다. 그러자 어느 쪽에서 그 점을 지적해 매우 난처했다. 그럴 때, 주관 부서 장관이 성금을 보내주셨기에 용기백배하여 계속 추진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 모금운동을 성공리에 마무리 한 뒤, 백범 암살범 추적자 권중희 선생과 나는 미국 문서기록관리청을 다녀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