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포함해 2주 연속 아파트값이 하락한 강남 3구는 매수·매도자 간 눈치 보기로 대체로 관망세가 우세했다. 사진은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머리말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집값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여러 차례의 고강도 대책을 연이어 선보였다. 그러나 한 번 붙은 집값 폭등의 불길은 더욱 맹렬하게 치솟아, 역대 정부 중 가장 큰 폭의 집값 상승을 일으킨 정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서울 강남을 비롯한 선호지역의 집값은 불과 2년 사이에 50% 이상 치솟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상승폭이 무려 100%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잘못한 부분의 하나로 늘 지적되는 것이 바로 집값 안정의 실패다.
한 가지 역설적인 사실은 공공연하게 주택 투기를 부추겼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의 집값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더 낮았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그때의 부동산 정책이 현 정부의 그것보다 상대적으로 더 나았다는 오해를 하기 십상이다. 물론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집값 안정에 실패한 점에서는 크게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집값을 안정시키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실패한 것과 대놓고 집값 상승을 부추겼던 것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는 점에서 비교의 대상이 될 자격조차 없다고 본다.
모두가 잘 알 듯, 노무현 정부 시절 천장을 모르고 뛰어 오르던 집값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현저한 안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7%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겠다는 허황된 공약으로 집권하게 된 이명박 정부로서는 집값 안정이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집값이 계속 뛰어 오르고 이를 통해 건설경기가 열기를 띠어야만 성장률을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부동산 투기 억제책을 줄줄이 풀어나가는 당시의 정부에 대해 나는 여러 번 경고음을 보낸 바 있다. 그러나 성장률 높이기에만 혈안이 된 그 정부는 위험한 불장난을 멈출 줄 몰랐다.
그 뒤를 이은 박근혜 정부는 여기서 한 술 더 떠 아예 빚내서 집 사라고 사람들의 등을 떠밀었다. 대출조건을 엄청나게 완화해 누구라도 빚내서 주택 투기에 나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았다. 우리 사회에서 '갭 투자'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였다. 어느 누구든 주변에서 갭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의 소식을 심심치 않게 들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앞장서서 이런 투기판을 깔아 주었는데 투기의 광풍이 불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두 정권에 걸친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 투기의 바람은 통제불능의 수준으로 거세지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당시의 상황이었고, 따라서 이 투기의 광풍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강력한 선제적 조처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었다. 국민에게 부동산 정책의 패러다임이 투기 조장에서 투기 억제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납득시켜야만 했는데, 매번 발표되는 대책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입으로는 집값과의 전쟁을 외쳤지만, 막상 투기의 광풍을 일거에 잠재울 강력한 펀치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문재인 정부의 현실 인식에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었다는 것은 주택 투기의 꽃길을 깔아주고 있는 역할을 하는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제'(이하 임대사업자 등록제)를 그대로 방치했다는 사실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나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이 말도 안 되는 투기조장 정책을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처넣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것을 그냥 답습한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임대사업자에게 제공되는 특혜를 한층 더 늘리는 역주행을 하고 말았다.
임대사업자 등록제는 부동산 투기를 조장한다는 문제점 이외에도 많은 효율성과 공평성상의 문제점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적폐라고 말할 수 있다. 민간 임대주택 공급을 활성화한다는 명분으로 재산세, 취득세,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소득세에 걸친 엄청난 세제상의 특혜를 제공한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공평과세의 원칙과 어긋난다. 우리 사회의 어느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도 이와 같은 백화점식의 세제상 특혜를 누리지 못한다. 주택을 사재기 해놓은 부자들에게 이런 특혜를 베푸는 이유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 길 가는 사람을 붙잡아 묻고 싶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세제상의 특혜는 돈의 흐름을 비생산적인 주택 임대업 쪽으로 돌림으로써 효율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빚는다. 주택 임대업이란, 이미 지어진 집을 사서 남에게 빌려 줌으로써 수입을 얻는다는 점에서 그리 생산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부동자금이 모두 이쪽으로 몰려 가면 생산적인 투자에 사용될 자금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임대사업자 등록제는 이처럼 돈의 흐름을 비생산적인 투자로 돌려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나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이 임대사업자 등록제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실패한 데 있다고 본다. 보유세 강화를 부동산 투기 억제책의 핵심의제로 설정해 놓았지만, 임대사업자 등록제의 존재가 보유세 강화의 실제 효과를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현 정부는 임대사업자 등록제라는 엄청나게 큰 구멍(loophole)이 뚫려 있는 그물로 부동산 투기라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노력하는 식이다. 정작 큰 물고기는 유유히 그 구멍을 빠져 나가는데 어느 세월에 고기 바구니가 가득 차기를 기다릴 수 있을까?
임대사업자 등록제의 실상
사실 '임대사업자 등록제'라는 것이 어떤 정책 혹은 조처의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다. 정부는 민간 임대주택 공급을 활성화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사람들에게 각종 세제상 특혜를 제공하고 있는데, 바로 이를 가리켜 마치 하나의 정책인 양 임의로 임대사업자 등록제라고 부른 것이다. 다시 말해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사람에게 제공되는 갖가지 세제상 특혜의 패키지에 임대사업자 등록제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말이다.
솔직히 말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임대사업자 등록제라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 그것이 어떤 문제점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부동산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닌 한 우리 국민 중 이 제도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런 제도가 존재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렇게 관심의 사각지대 안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숱한 문제점을 갖고 있는 이 제도가 국민과 정치인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그대로 유지되어 왔을 것이라 고 생각한다.
정확한 실태의 확인을 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주택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상 혜택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온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이명박 정부는 주택거래를 활성화시키고 전월세시장을 안정화시킨다는 명목으로 2010년 8월 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그 이후 2011년 2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주택을 매입해 임대사업자들에게 각종 세금혜택을 주는 '전월세시장 안정화 대책'을 내놓았다. 이들에게 제공되는 세제상 특혜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정도의 파격적인 수준으로 뛰어오른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4년 2월에 발표된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이었다. 그 조처와 더불어 도입된 임대사업자에 대한 조세상 특혜는 마치 특혜의 백화점과도 같은 인상을 줄 정도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 방안이 나올 즈음 집값이 주춤한 상황에서 더 이상 상승이 어렵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임대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우월한 입장을 차지한 임대인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함으로써 임차인을 어려운 처지로 몰아넣는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의 정부는 임대주택의 지속가능한 공급체계 구축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보고, 이 목표의 구체적 실행 방안 몇 개를 제시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민간 임대주택 공급의 활성화였다. 즉 민간의 다주택 소유자가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도록 유도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