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학교운동장 <욱일기> 앞에서 학생, 군인이 함께 조회하는 장면70-80년대 애국조회 장면은 일제강점기 조회를 연상시킨다.
민주시민교육이 아니라 신민교육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출처 : 독립기념관 소장)
독립기념관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나갈 땐 근처 학교 아이들을 태극기를 손에 들게 해 몇 시간이고 김포공항 길가에 줄지어 동원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온데간데없이 실종되었고 보도통제는 일상적 풍경이었다. 의문사가 줄을 이었고 정치권력의 야만성이 극에 달한 시절!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하는 뻔뻔함을 드러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 시절까지 학교는 수십 년 동안 국정교과서 시대였다. 돌이켜보건대 '정의사회구현'을 전국 모든 관공서에 내걸고 큰소리쳤지만 가장 불의한 시절이 80년대 5공 정권이었다.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적 중립의 허울 아래 정당 가입 등 교사를 포함한 공무원의 가장 초보적인 정치기본권마저 박탈했다. 시민과 공동체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게 '정치'인데도 교실에선 '정치'를 금기어로 받아들였고 불온시했다.
아이들은 입시공부에 도움이 되는 국영수 과목에 열중하였고 그것이 '학생다운' 모습이고 '모범생'으로 치부되었다. 사회 시간에 배우는 민주주의와 선거, 그리고 법과 정치는 시험을 위한 관념적 지식일 뿐이었다. 학교생활을 통해 아이들이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삶의 경험으로 생활 속 민주주의를 체득하는 게 아니었다. 민주주의와 학교는 현실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느낌으로 별개의 영역으로 따로 존재해 왔다.
북유럽 어느 나라에선 각 정당의 정치인들이 고등학교를 방문하여 자신이 속한 정당의 정책을 홍보한다. 마치 입시설명회처럼 각 대학의 입학처 관계자가 자기 대학을 홍보하듯이 청소년과 관련된 교육 정책을 중심으로 정당 활동, 바로 정치활동이 학교라는 공적 공간에서 펼쳐진다. 청소년들에겐 각 정당의 강령과 정책, 특히 교육 분야나 청소년 복지에 대한 정책을 접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정치교육'의 현장인 셈이다. 물론 동원을 시키거나 강제하지 않고 학생 참여는 자율에 맡긴다.
더 나아가 아이들은 논쟁적인 정치사회 현안에 대해 교실에서 토론수업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모의 투표를 통해 선거교육에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게 그들 선진국 정치교육의 현실이다. 그래서 핀란드를 비롯해 북유럽 국가의 투표 참여율은 70~80%를 상회한다. 우리나라의 50% 언저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선관위 통계자료(2020)에 따르면 2016년 20대 총선 투표율은 58%이고 18대 총선 투표율은 46.1%이다.
그간 한국사회에서는 '학교 교실 = 정치 무균실'이어야 했다. 간혹 정치이야기를 하는 교사는 이상한 교사이자 불순한 교사로 치부되고 처벌받았다. 물론 편향된 가치관을 갖고 학생들에게 특정 정치세력을 두둔하거나 특정 종교를 찬양하는 교사들이 간혹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학교 교실은 '정치 무균실'로 존재해 왔다. 입시교육이 지배적인 현실에서 학생들은 현실 정치에 별반 관심을 보이기 어려웠다.
사실 대다수의 학교 청소년들이 정치현실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방치되었다. 정치적 결사체인 정당의 강령이나 정책에 대해선 거의 알지 못한다. 굳이 알려고 애쓰지 않아도 대학 입시에 불이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한국 정당의 역사, 바로 한국 정당사로 들어가면 극히 일부 아이들을 제외하고 학생들 대부분은 먹통이 된다. '태정태세문단세'는 대부분 외어도 지금 한국사회 정당들이 과거 어떤 계통으로 존재해 왔는지에 대해선 까막눈이다. 한 마디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제대로 된 정치교육! 바로 주권자 교육을 받아보질 못한 게 우리네 교육현실이기 때문이다.
성숙한 시민은 저절로 탄생하지 않는다. 학교와 사회에서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체계적으로 길러질 뿐이다. 선진국 시민의 높은 투표율이나 높은 노동조합 가입률, 그리고 시민단체에 대한 높은 참여율은 모두 오래 전부터 시행된 '민주시민교육의 결실'이다. 프랑스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 노조 대표로서 회사 대표와 어떻게 교섭하고 협상할 것인지가 실제 수업사례로 실려 있는 게 우연이 아니다.
중고교생 스스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은 어느 정당이고 더러는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는 모습이 결코 낯선 풍경도 아니다. 모두 학교 정치교육! 바로 주권자 교육이자 민주시민교육의 오랜 결실이다. 물론 교사든 공무원이든 프랑스에선 정당 가입이 허용된다. 선거에도 입후보할 수 있는 정치기본권이 보장된 나라가 프랑스이다.
김원태 학교시민교육연구소장의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현황과 과제>(2020)에 따르면 독일 중학교 정치교과서엔 중학생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자체를 탐방하고 자기 지역 내 외국인 참정권 실태를 조사하는 내용이 교과서에 들어가 있다. 나아가 지역사회 교통 현안 논쟁인 도로분리대 논쟁을 실제 교과서 내용을 토대로 토론수업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선거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과 실제로 선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리고 예비 유권자로서 자신들이 꿈꾸는 정당을 만들어 보는 내용이 선거전 프로젝트 수업으로 함께 실려 있다. 독일의 학교교육이 토론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는 수업구조이자 학교환경이다.
독일 중고교 학교사회에선 민감한 정치사회현안을 날 것 그대로 학교현장에서 수업자료로 쓸 수 있다. 논쟁성 짙은 정치사회현안을 교실 수업으로 재현하는 게 일상적인 학교풍경이다. 1972년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따른 교육의 대원칙이 그대로 학교 교실 현장에 적용된 탓이다.
물론 교사는 특정한 가치나 지식을 아이들에게 강제로 주입하거나 교화시키려 애쓰지 않는다. 철저히 정치적 중립을 지킬 뿐, 양쪽의 의견이나 다양한 시각의 주장들을 풍부하게 자료로 제시하고 토론을 유도할 뿐이다. 결론은 아이들 몫이다. 저마다 자신의 경험과 의견에 따라 토론수업을 거치면서 자신의 세계관을 간직한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한다.
독일은 연방 차원에서 '연방 정치교육원'이 존재하고 주마다 '주 정치교육원'이 존재한다. 학교사회와 시민사회가 상호 연계하여 민주시민교육을 평생교육체계 속에 녹여낼 수 있도록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적극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기본권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미국이나 일본조차 교사의 정당 가입은 허용하고 있고 학생들에게 모의투표를 통한 선거교육도 시행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현실과 너무나 차이가 크다. 교사든 학생이든 정치와 거리를 두는 것이 잘한 일이고 현명한 시민이라고 생각하는 선진국은 단 한 군데도 없다.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대학생이 되거나 취업을 하여 사회인이 될 텐데 주권자 시민의식이 결여돼 있다면 어떻게 그런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가 선거를 통해 성숙한 결정을 할 수 있겠는가?
성숙한 사회는 성숙한 시민들로 결정되고 구성된다. 성숙한 시민은 공동체문제, 바로 정치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명하고 참여하는 능동적 시민들로부터 시작한다. 학교교육을 통해 민주주의 원리를 배우고 학교문화 속에서 민주주의를 생활 속에 체험하며 능동적 시민으로 성장할 때 건강하고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탄생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