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들라마 '녹두꽃' 한 장면죽창을 들고 진군하는 동학농민군
추준우
일본군의 본격적인 동학농민군 학살은 청ㆍ일전쟁을 통해 청국군을 격파하고 친일정부를 세워 조선의 정권을 장악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10월 9일(음) 삼례봉기 이후 10월 12일(음) 동학농민군이 공주로 진격하면서 일본군과 접전이 본격화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10월 15일(음) 충청북도 청풍 부근에서 충주지방 경비병이 동학군 수령급 이하 30여 명을 살육하고 소총 2,000정과 화약 등을 약탈하였다.
10월 25일(음)에는 대구 병참부의 일본군이 성주에서 동학군 11명을 붙잡아 살해하였다. 일본군은 이에 앞서 10월 12일 보병 제19대대가 한성을 출발해서 학살전에 참여하였다.
대대장 미나미 소좌를 지휘관으로 하는 3개중대는 전병력을 3분하여 공주로 진격하기 시작하였다. 마스키 대위가 이끈 제1중대는 동로(東路)로 장호원을 경유하고, 모리오 대위의 제2중대는 서로(西路)로 진위를 경유하고, 이시구로(石黑光正) 대위의 제3중대는 중로(中路)로 양지를 경유하여 남하하였다. 학살대는 일본군 3개 중대가 주력을 이루고 기타 조선 정부군과 일본군이 양성한 조선측 교도(敎導) 중대, 그 밖의 대륙낭인들이 참가하였다. 동학군이 일본군과 처음으로 대규모의 접전을 벌인 것은 우금치전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