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의 다른 글 ▲관군에 맞서 싸우고 있는 동학농민군들. 황룡전적지 기념탑에 새겨진 부조물이다.이돈삼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열악한 무기로 무장한 동학농민군은 현대식 병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의 합동 공격을 당해내기 어려웠다. 결과는 시산혈해를 이룬 참담한 패배였다. 엄동설한에 일본군과 관군은 완전무장한 반면 동학농민군은 의복이 남루하여 말이 아니었다. 상대는 방한모에 양털 방한복차림으로 방한 양말과 방한 가죽신을 신고 서양 신무기인 기관총과 서양총으로 대항하는 정규군이었다. 이와 달리 화승총과 죽창으로 무장하고 머리에 흰수건으로 띠를 두른 동학농민군은 무명베 핫바지 차림으로 버선발에 짚신을 신어, 눈이 오면 물이 들어와 젖은 한복과 질퍽이는 짚신으로 감기와 동상에 걸리기 일쑤였으며 연일 추위에 지쳐서 사실상 전투 자체가 무리였다. 추위가 없는 봄이나 여름이었다면 아무리 신무기를 가진 일본군과 관군이라도 수많은 동학군의 인해전술 앞에 굴복했을 것이다. (주석 5) ▲황룡전적지 기념탑에 조각된 동학농민군들. 장태를 굴리며 관군에 맞서는 모습이다.이돈삼 일본군은 우금치전투의 전황을 다음과 같이 본국에 보고하였다. 동학농민군의 피해를 줄여서 보고하는 등 허위성이 짙은 보고서이다. 여기서 제3소대를 우금치산에 증파하여 일제사격으로써, 전방 산 위 약 800m가 되는 곳에 군집한 적(동학농민군)을 대적케 했으며, 경리영병(經理營兵)은 가장 가까운 적을 향해 사격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적은 교묘하게 지형지물을 이용, 약 200명이 우금치산 꼭대기에서 약 150m 되는 산허리로 진격해 왔다. 그 선두의 5, 6명은 몇 미터의 앞 사각 지점에 육박했고, 앞산 위에 있던 적은 더욱 더 전진해 왔다. 수시간 동안 격전했는데 우리 군대 (일본군)가 가장 힘써 싸웠다. 오후 1시 40분 경리병영의 일부(50명)를 우금치산 전방 산허리로 전진시켜 우금치산 산꼭대기에서 약 140내지 150m의 산허리에 걸쳐 있는 적의 왼쪽을 사격케 하였다. 그래서 적은 전방 약 500m의 산꼭대기로 퇴각하였다. 큰사진보기 ▲동학농민군으로 분장한 학생들이 관작리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예산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으로 들어서고 있다.이재형 오후 1시 20분 우금치산의 우리 군대 (일본군)를 그 전방 산허리로 전진시키고 경리영병에 급사격을 시켰으며, 적이 동요되는 것을 보고 1개 소대와 1개 분대로써 적진에 돌입케 하였다. 이에 이르러 적이 퇴각했으므로 경리영병에게 추격을 맡기고, 중대는 이인가도(利仁街道)로 나가 적의 퇴로로 다가가려고 하였다. 중대는 이인가도로 나가 급히 추격, 드디어 이인(利仁) 부근에 이르러 그 일대의 산허리에 불을 지르고 몰래 퇴각하였다. 그러나 동남쪽의 적도가 여전히 퇴각하지 않으므로, 한국군에게 우금치산 · 오실 뒷산 향봉ㆍ월성산 등의 경계를 맡기고 기타 대원은 공주로 철수하였다. 이 때가 오후 8시였다. (주석 6) 주석 5> 김기전, 앞의 책, 167쪽. 6> 『주한일본공사관기록』 제1권, 「공주부근전투상보」, 247~248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동학혁명 #김개남장군 #동학혁명_김개남장군 #우금치전투 #동학군_ 패퇴 추천9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10만인클럽 10만인클럽 회원 김삼웅 (solwar) 내방 구독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 26세, 가족과 함께 만주 망명 구독하기 연재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다음글70화일본군, 각처에서 동학농민군 학살 현재글69화엄동설한에 핫바지 차림으로 일본 정규군과 전투 이전글68화동학군, 2만명 중 5백명만 살아남아 추천 연재 전강수의 경세제민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의 장례이야기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제주 사름이 사는 법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여주양평 문화예술인들의 삶 "마지막 대사 외치자 모든 관객이 손 내밀어... 뭉클" SNS 인기콘텐츠 "끝내자 윤건희, 용산방송 거부" 울먹인 KBS 직원들 "무인기 사태 후 파주 읍내에 중무장 군인들 깔렸다"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윤핵관과 시한부 장관의 조합... 국가에 재앙 몰고 왔다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강에 뛰어든 소녀와 그녀를 찾아다닌 남자의 최후 이창수 "김건희 주가조작 영장 청구 없었다"...거짓말 들통 용산 '친오빠 해명'에 야권 "친오빠면 더 치명적 국정농단" AD AD AD 인기기사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4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5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엄동설한에 핫바지 차림으로 일본 정규군과 전투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이 연재의 다른 글 71화옛 친구의 밀고로 관군에 체포돼 70화일본군, 각처에서 동학농민군 학살 69화엄동설한에 핫바지 차림으로 일본 정규군과 전투 68화동학군, 2만명 중 5백명만 살아남아 67화동학군, 우금치전투에서 참패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스페셜 갤러리 스포츠 전체기사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후원/증액하기 리포트 특강 열린편집국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트위터10만인클럽트위터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