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화랑마을에 전시된 임신서기석.
경북매일 자료사진
'임신서기석'에 자신들의 향후 목표와 언약을 담아낸 청년들은 화랑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그들 역시 풍류도(풍류정신), 혹은 풍월도의 가르침에 근거해 비문(碑文)을 새기지 않았을까라는 추측이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풍류도'란 단어가 생겨난 근원은...
이처럼 신라사회와 그 사회를 주도했던 청년들의 조직 화랑도(花郞徒)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풍류도(풍월도)의 어원을 찾아보는 작업은 의미가 작지 않을 터.
철학자 한흥섭의 논문 <풍류도의 어원>은 주요 학자들의 견해를 치우침 없이 두루 소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한흥섭은 풍류도를 "고대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한 사상 가운데 하나"라고 정의하며, "한국 철학사에서 풍류도의 위상은 중국에서 유입된 유교, 불교, 도교와 비교해 초라하기 짝이 없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는 자료의 숫자가 적고, 신빙성 여부의 판단이 어려우며, 논리 전개에서의 객관적인 설득력 결여가 풍류도를 하나의 체계를 갖춘 학문적 이론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풍류도의 어원>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풍류도의 본질과 뿌리를 찾아보자는 한흥섭이란 학자의 열정에서 출발된 것이 아닌가라고 짐작해본다. 그는 위에 언급된 논문에서 최남선(1890~1957), 안호상(1902~1999), 양주동(1903~1977)이 각기 주장한 풍류도의 어원과 그 의미에 관한 견해를 소개하고 있다.
최남선 "풍류와 풍월의 어원은 부루"
육당 최남선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이다. 한흥섭에 따르면 최남선은 풍류도의 어원을 '부루'에서 찾고 있다. '부루'란 예부터 존재한 고유 신앙이며, 그 신앙의 요지는 '하늘의 도(天道)'를 실현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 최남선의 주장.
더불어 최남선은 이 신앙이 유교와 불교에 앞서 있고, 유교·불교가 유입된 후에도 함께 존립했다고 봤다. 그렇다면 육당이 풍류도의 어원이라 칭한 '부루'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닌 단어일까? 최남선의 저서 <조선상식문답>이 물음에 답하고 있다. 다음과 같다.
"부루는 '밝의 뉘'가 이리저리 변하여 달라진 말이다. 대개 '밝'은 광명과 신(神)이요, '뉘'는 세계이니 '밝의 뉘'라 함은 광명세계, 곧 신의 뜻대로 하는 세상이란 의미다. 훗날 '밝의 뉘'란 말이 여러 가지로 변하고 또 이것을 한문으로 이리저리 쓰는 가운데 그 종교적 진면목이 일정 부분 가려지게 되었지만, 그 고갱이(핵심)는 꾸준하게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위의 인용을 볼 때 최남선은 '풍류도'를 한국의 고대 신앙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 종교적 지향점이 '하늘의 도가 실현되는 밝은 세상'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한흥섭은 이 논지를 보다 세밀하게 분석해 육당이 말한 바 '부루' 즉 풍류도의 골자는 '홍익인간'이고, 주장의 연원은 '단군사화'라고 추정했다.
안호상 "발달길의 이두문(吏讀文)이 풍류도"
한흥섭에 의하면 사학자이자 정치가이기도 했던 초대 문교부장관 안호상은 "기본적으로 배달교(단군교)에 근거한 주체적 민족주의자"다. 그렇기에 단군의 가르침을 우리 민족 고유의 정통적 철학과 사상으로 믿었고, 그것을 배달길(風流道 또는, 화랑도)로 표현했다. 안호상이 정의하는 풍류도(풍월도)는 '배달길'의 이두문(吏頭文·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은 것)이다. 아래 인용을 보자.
"배달길을 풍월도라, 또 배달교를 풍류교(風流敎)라 번역한 것은 순전히 우리말의 음을 따라 이두문으로 적은 것이다. 풍월도의 풍(風)이 옛날엔 발함 풍자요, 또 바람을 배람이라고도 했다. 또 풍월도의 월(月)은 달 월자다. 이들 '발'과 '배'와 '달'을 합쳐보면 풍월도는 '배달길'이란 말이다. 또한 풍류도의 류(流)는 흐를 류자인 동시에 달아날 류자임으로 풍류도 역시 '발달길'이 된다."
안호상은 신에 대한 숭배, 조상 공경, 인간 사랑이라는 배달교의 3가지 덕목이 풍류사상의 핵심 내용과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관한 보다 면밀한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양주동 "풍류와 풍월은 순수 우리말인 ㅂ에서 유래"
논문 <풍류도의 어원>에서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것은 '전설적 국문학자' 양주동의 풍류도 관련 주장이다. 양주동은 사뇌가(詞腦歌·향가)의 해석 과정에서 풍류도와 풍월도가 우리나라 고대(古代) 종교사상인 'ㅂ道'를 한자로 표현하기 위해 빌려온 글자라고 말한다. 즉 풍류와 풍월은 순수 우리말인 'ㅂ'에서 유래했다고 본 것이다. 여기서 'ㅂ'과 'ㅂ道'는 뭘 의미하는 걸까? 이에 관해 한흥섭은 이런 해석을 내놓고 있다.
"양주동의 글자 풀이에 의하면 'ㅂ'은 광명(光明)이나 국토(國土)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ㅂ道' 즉 풍류도는 '광명도'나 '국토도'가 되고, 이는 곧 태양 숭배나 자연 숭배 사상임을 뜻한다. 이러한 관점은 최남선이 말한 광명계의 태양을 숭배하는 민족적 종교사상과도 일치한다."
광명세계로 가고자 하는 의지,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 자연을 대하는 겸양한 태도…. 풍류도는 이런 이데올로기의 집합체가 아니었을까?
'임신서기석'을 뒤로 하고 화랑마을을 내려오는 길. '풍류도의 정신'을 가슴에 담고 자신과 나라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홍안(紅顔)의 청년들이 떠올랐고, 문득 1천300년 전 두 화랑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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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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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 전 2명의 화랑, 그들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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