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도로 12번국가 지정 아름다운 도로(National Scenic Byway)로 지정된 12번 도로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조금 더 가면 레드 락 캐니언이 있고, 좀 더 가면 브라이스 국립공원이 나온다.
이만섭
공원으로 가는 12번 도로 양 옆의 숲에 드문드문 눈이 남아있고, 살짝 낀 안개와 잔뜩 흐린 하늘은 을씨년스럽다기보다는 눈에 대한 기대 때문에 도리어 즐겁다. 길섶 풍경 살피랴 하늘 살피랴 노량으로 가다 보니 어느샌가 나폴나폴 눈송이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브라이스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이 짙어져 공원 입구에 다다를 무렵엔 함박눈으로 바뀌어 온 하늘을 덮었다. 눈 덮인 브라이스의 모습을 볼 생각에 조금씩 속도를 올려보지만, 눈길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밑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눈이 제법 많이 쌓인 것을 보니 공원에는 아침부터 눈이 내린 모양이다. 공원 요금소와 방문자 안내소는 문을 열지 않았다. 오늘은 추수감사절 당일이다보니, 근무자가 없는 모양이었다. 비지터 센터 앞 주차장에 들르니 궂은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비지터 센터가 문을 열지는 않았지만, 센터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거나 주변을 산책하는 이들로 북적였다.
소복소복 추억도 쌓이네
함박눈에 거센 바람이 몰아친다. 잔뜩 몸을 움츠리고 사진을 찍으려니 바람에 날린 눈송이들이 렌즈를 가로막아 얼른 몇 장 찍고 거둬들였다. 아침에 세다에서 만난 눈보다 훨씬 더 많을 뿐만 아니라, 얼마나 거세게 내리던지 거의 '폭설' 수준이다. 그동안 이 정도의 눈을 맞았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눈이 내렸다.
오늘처럼 큰 눈이 내릴 때는 공원 트레일이나 뷰 포인트들을 닫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늘은 어떨지 모르겠다. 공원에 안내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어디 알아볼 만한 곳도 없기 때문에 그냥 둘러보다가 막혔으면 돌아 나오는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천천히 운전하다 보니 눈 쌓인 공원 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얼핏 봐도 멋있어 보이는 상록수와 나뭇잎과 가지에 내려앉은 하얀 눈송이들이 대비를 이뤄 절경이다. 이런 풍경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싶어 사진 한 장 찍고 가려고 갓길에 차를 세우려는데, 차가 그만 눈에 미끄러져 길 아래로 비껴 나고 말았다.
얼른 사륜으로 바꾸고 이리저리 해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눈 때문에 보이지 않았는데 갓길이 없는 턱이 진 길이었던 것이다. 한참을 씨름하고 있는데, 지나던 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덤벼들어 도와주기 시작했고, 어떤 이는 자기가 운전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며 도와주려 한다. 여러 사람이 붙어 뒤에서 밀면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한번 미끄러지기 시작한 차는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그러다가 마침 준비해 가지고 다니던 탈출용 보드(Traction Boards)를 이용해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지난해에는 화이트 포켓(White Pocket) 여행에서 모래에 빠져 견인하느라 무려 700달러의 거금을 날렸는데, 이번엔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함박눈이 내리는 상황에서도 나몰라라 하지 않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우려 선뜻 나섰던 그 모든 여행객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