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후공원
김경준
중국인들이 얼후 반주에 맞춰 합창하고, 무리지어 춤을 추는 등 한가로운 풍경이 가득한 공원에서 우리는 조국의 해방이라는 큰 뜻을 품고 모인 한국 청년들의 흔적을 찾았다.
유후공원은 청년공작대 소속 청년들이 모여서 운동도 하고, 문화선전활동을 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청년공작대원이었던 여성독립운동가 지복영 선생은 류저우에서의 청년공작대의 활동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유주(류저우)에 도착하고 얼마 안 되어 우리 젊은이들은 일을 해야겠다고 서둘렀다. 그때 일이란 일본 침략을 막아내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총 들고 일선에 나가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후방에서라도 항전의식을 고취하고 항전하는 방법을 널리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우선 이런 일을 자발적으로 시작했다." - 지복영, <민들레의 비상> 중
청년공작대원들은 길거리에서 항전가요를 부르고 항일을 위한 한중 연대를 독려하는 벽보와 전단을 만들어 담벼락에 붙이거나 배포하는 활동에 주력했다. 또 부상병 위문과 항전의식 고취를 위한 연극 활동도 주요 활동 중 하나였다.
다들 어찌나 연기를 잘했는지 그리고 다들 어찌나 일제에 대한 적개심이 강했는지, 일제의 주구(앞잡이) 역을 맡은 공작대원에게 돌과 신발짝이 마구 쏟아질 지경이었다고.
이들은 1939년 4월 류저우를 떠나면서 정들었던 중국인 공작대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그 기념사진을 촬영한 자리가 바로 유후공원 내 '음악정' 앞이다.
이번에 답사단이 방문해 보니 당시와 너무나도 많이 바뀌어 사진만 놓고 봐서는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무들도 잘려나가고 공원에 새롭게 심은 나무, 들어선 건물들로 인해 그 당시의 자리와 각도를 정확히 추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