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위의 점심(1863)마네 Source: Wikimedia Commons
오르셰 미술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네의 그림은 스캔들에 가까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아무리 봐도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여인의 누드는 혼자서 두드러지듯 눈부신 하얀 빛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하얀 빛 때문이 아니었다. 당돌하게 관람자를 쳐다보고 있는 여인은 감추는 것도 없고 은밀하지도 않으며 부끄러움이라고는 전혀 없는 듯 오히려 뻔뻔하기까지 하다. 아무리 고전 작품의 구도를 빌렸다고는 해도 누구나 아는 배경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녀들의,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행태를 굳이 그림으로 보는 일은 민망하면서도 불쾌한 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그림에 대한 적대적인 반응이 놀랍고 당황스럽기만 했다. 고전을 모티브로 했고 그 흔한 누드를 그렸을 뿐인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아예 대놓고 따라 그린 것은 경의를 표하기 위한 화가들의 흔한 방식 중 하나였다. 워낙 실제 모델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마네는 당시 자신의 그림에 주요한 모델이었던 빅토린 뮈랭을 모델로 했고 살아있는 인물의 느낌과 분위기를 순간적으로 포착하고자 디테일을 제거하고 빠르게 그리는 방식을 취했다. 즉, 자신이 생각하기에 알맞다고 여겨지는 대상과 테크닉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된다는 것인가. 사실 그랬다. 아카데미의 그림이라는 것은 그림의 주제도 주제지만, 그림에 등장하는 대상의 모습과 회화의 테크닉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라는 것은 원래 전통적인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다. 애초에 마네는 이러한 방식을 거부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렸으므로 그것이 아무리 고전을 바탕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고전을 모티브로 함으로써 고전과 아카데미에 더욱 더 반기를 드는 것으로 느껴진 것 또한 마네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다.
재밌는 것은 마네 자신은 자신의 그림이 아카데미와 평단, 대중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리라 기대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다. 자신의 그림이 불러온 반응을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모네는 자신의 그림에 대한 반응에 놀라움과 당혹감을 느꼈다. 마네는 자신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다음 번에도 비슷한 그림으로 다시 한번 경악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1865년 마네의 '올랭피아'(1863)가 전시되었을 때 평단과 대중의 반응은 가혹했다. 이 작품은 모티브도 평가도 모든 면에서 '풀밭 위의 점심'을 닮아 있었다. 분명히 어디에서 많이 본 구도였고 흔히 볼 수 있는 누드화였지만 마네의 그림 속 여인은 역시나 용납하기 어려웠다.
이상적인 형상도 아니고 수줍거나 초월한 표정도 아니며 무엇보다 그림 밖 관람자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올랭피아는 아름답지도 않고 만만하지도 않았다. 당혹스러움도 잠깐 이내 욕을 퍼부어대거나 그림을 훼손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