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가능성 단정 지은 TV조선(2018/6/25)
민주언론시민연합
2018년 6월 25일 방송됐던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은 강진에서 한 학생이 아빠의 친구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다뤘습니다. 당시는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된 바로 다음 날이었습니다. 가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태였기 때문에 가해자의 범행동기나 범행방식 등은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진행자 김광일씨와 출연자들은 가해자의 범행동기나 범행방식을 임의로 추측하여 피해자의 인권을 짓밟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진행자 김광일씨의 진행방식이었습니다. 김씨는 강진 살인사건이 성폭행 범죄일 것이라며 성범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예를 들면 이 50대 용의자가 (공범에게) '내가 여고생 하나를 데리고 가는데, 너하고 나하고 이 여고생을 어찌어찌', 좀 왜 성폭행을 이르는 자신들의 말을 쓴 다음에, '그다음에 어떻게 하자' 이랬을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라고 추측성 발언을 내놓았습니다. 오히려 출연자인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 교수가 "(공범에 대한) 그런 어떤 증거들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성은 조금 낮은 것 같고요"라며 공범 가능성을 일축했습니다.
김광일씨 진행방식, 심의과정서 도마 위에
이 밖에도 김광일씨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어떤 또 강력한 유혹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뭔가 그러니까 '네가 정상까지만 가면 내가 너한테 당장 30만 원 주겠다', '뭐 몇 십만 원 주겠다' 이랬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라고 추측성 질문을 해 출연자들이 추측과 단정을 바탕으로 한 발언을 내놓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김씨 질문에 출연자 이호선 숭실사이버대학교 교수는 "확인된 바는 전혀 없는 상황입니다만 요새 친구들 중에는 경우에 따라서 이렇게 범죄에 노출되는 경우에 원조교제가 있다든지, 아니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몸캠, 야외에서 일련의 누드 사진 같은 것을 찍어 가지고 웹사이트에다 올려 금품을 얻어내거나 하는 경우들이 있다"고 말하며 근거도 없이 원조교제와 몸캠 등을 피해자와 연관 짓기도 했습니다.
김광일씨는 출연자들이 잘못된 발언을 할 경우 이를 제지하거나 정정하는 역할을 해야 할 진행자임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섣불리 추측하거나 단정하고 출연자들의 추측성 발언을 부추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김광일씨의 진행방식에 대해 당시 이 안건을 심의했던 윤정주 위원은 "진행자 자체가 중심을 잡지 않고 더욱더 얘기들을 부추기면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본인이 나서서 얘기하는 경우가 있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전광삼 위원은 "강진 살인사건 관련해서 비단 TV조선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 역시 무수한 추측을 했다"며 TV조선의 보도만 추측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고 두둔했지만, 윤정주 위원은 "다른 방송 또는 다른 신문에서도 관련 사안에 대해서 추측성 내용이 나왔지만 몸캠을 했다든지 성매매, 원조교제 이런 가능성에 대한 추측은 없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보도'가 아니라 '대담'이라 객관성 조항 제외?
결국 해당 방송에는 법정제재인 '주의'가 의결됐습니다. 하지만 상정될 때 오보‧막말‧편파 조항에 해당하는 제14조(객관성)과 제27조(품위 유지) 제5호가 적용되었던 것과 달리, '주의'로 의결될 때 제14조(객관성) 조항은 빠졌습니다. 2018년 제22차 방통심의위 정기회의(2018.10.22)에서 전광삼 위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패널들이 나와서 나름대로 자기의 경험 등을 가지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그 대목에서 이것에 맞네, 안 맞네 얘기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중략) 의혹 제기라든가 가능성,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가능성 제기, 이런 부분들을 원천 봉쇄시켜야 한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더군다나 이 사건은 미제로 끝난 사건이다. 어떤 것이 진실인고 진실이 아닌지에 대한 명확한 결론 없이 사건이 종결되었다. (그래서) 진실성이냐 객관성이나 이런 부분들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같은 회의에서 이소영 위원도 전광삼 위원과 비슷한 발언을 했는데요. 이소영 위원은 "이것이 만약에 보도프로그램이라고 한다면 아마 제14조(객관성) 위반도 문제가 되었을 텐데, 그것이 아니라 여러 패널이 나와서 자기 의견을 얘기하는 형식으로 가능성에 대해 제기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좀 더 완화된 기준이 적용된다"라고 말했습니다.
보도프로그램이 다른 프로그램들보다 더 엄격하게 '객관성' 조항을 적용받아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보도프로그램이 객관성 조항을 더 엄격하게 적용받아야 한다고 해서 보도프로그램 이외의 프로그램이 객관성 조항을 더 완화된 기준으로 적용돼야 한다는 말은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더군다나 종편의 시사 대담 프로그램에 대해 시청자들은 이미 보도프로그램과 같은 신뢰수준으로 시청하고 있습니다.
또한 방통위가 2011년 펴낸 <영국 BBC 제작 가이드라인 및 심의 사례>(2011.12)에 나온 '범죄와 반사회적 행위 보도'에 관한 원칙을 보면 BBC는 '범죄 및 반사회적 행동에 대한 보도는 시청자에게 사실을 맥락 내에서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증거 없이 연상을 통해 유죄를 암시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범죄 보도에서는 이미 드러난 사실을 맥락 내에서 전달하는 것이 맞고, 전광삼 위원이 말한 것처럼 '의혹 제기라든가 가능성,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가능성 제기'는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근거 없는 무분별한 의혹 제기가 얼마나 많은 부작용을 불러왔는지 우리는 보도 및 시사 대담프로그램의 문제를 통해 이미 경험한 바 있습니다.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은 진행자와 출연자들이 성범죄 가능성을 제기하고 단정 짓는 방송을 했습니다. 종편의 시사 대담프로그램이 보도프로그램과 같은 수준의 신뢰도를 갖고 있다는 점과 BBC가 밝힌 범죄 보도의 원칙 등을 생각해본다면, 출연자들이 여러 가능성일 제기할 수 있는 대담프로그램이라는 이유로 객관성 조항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은 방통심의위에서 TV조선에 대한 봐주기 심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오보‧막말‧편파 조항 적용하고도 가장 낮은 '의견제시'
마찬가지로 강진 살인사건을 다뤘던 TV조선 <이것이 정치다>(2018/6/28)에 대해 방통심의위는 오보‧막말‧편파 조항인 제14조(객관성), 제27조(품위 유지) 제5호, 제51조(방송언어) 제3항을 적용하고도 행정지도에서 가장 낮은 수위인 '의견제시'를 의결했습니다.
'의견제시'를 의결할 만큼 방송내용에 별 문제가 없었던 것일까요? 아니었습니다. 출연자인 서정욱 변호사는 본인의 살인사건 변호 경력을 근거로 들면서 "(용의자가) 큰 강력한 전과는 없어요. 근데 저는 초범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반드시 이게 여죄가 있다"며 가해자에게 여죄가 있다고 단정 지었습니다.
서정욱씨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머리카락을 자른 이유에 대해서도 "엽기적인 성적 취향, 옛날에 이게 제가 맡았던 사건 중에 연쇄살인범 중에 보면 죽이고 나서 속옷만 가져가는 경우도 있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범죄가 가해자에게 엽기적인 성적 취향이 있어서 벌어진 '엽기 범죄'라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안타깝게 희생된 피해자의 인권을 또다시 침해한 것입니다. 서씨의 발언 와중에 그의 발언에 심취한 다른 출연자는 가해자를 향해 '미친놈'이라며 욕설을 내뱉었습니다. 그리고 시청자는 고스란히 그 욕설을 들어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