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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세 마리는 왜 환경부 장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나

청년들,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다

등록 2020.02.07 11:23수정 2020.02.0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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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서는 환경부 장관 청년들이 공룡옷을 입고 조명래 장관 뒤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 문구는 "우리처럼 멸종할래?", "인류도 언젠가 화석연료 되겠지" 등.

뒤돌아서는 환경부 장관 청년들이 공룡옷을 입고 조명래 장관 뒤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 문구는 "우리처럼 멸종할래?", "인류도 언젠가 화석연료 되겠지" 등. ⓒ 오지혁

지난 1월 31일, 환경부 장관과의 '타운홀 미팅'에서 나를 포함한 청년들이 공동행동을 펼쳤다. 우리의 요구는 환경부가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그 과정에 청년 참여를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행사 주제인 '녹색포용과 환경정의'가 실현되려면 기후정의를 보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있었다. 우리는 질의 시간에 이런 요구를 부족하게나마 전달한 다음, 행사가 끝날 무렵 일어서서 피켓을 들고 공룡들을 입장시켰다. 다양한 단체 청년들이 함께 행동한 첫 사례라서 특별히 의미 있었다.

이날의 공동행동을 결심한 동기는 위기감이었다. 기후위기가 매년 급격히 심해지는데도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세계가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중단하지 않는 한, 인류는 막대한 피해를 볼 것이다. 이 시점에 정부 대응을 촉구하려면 청년들의 산발적 움직임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 과정에서 공통된 문제의식과 행동 목적에 합의하고, 우리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기를 기대했다. 첫 행동의 준비 기간은 사실 사람을 모으는 과정이나 다름없었다.

환경부 장관의 약속과 한계

행사를 마친 뒤, 우리는 서로의 복잡한 소회를 확인했다. 과업을 완수했다는 해방감에는 착잡한 마음이 묻어 나왔다. 성과를 하나씩 짚으면서도 쓴맛을 지우지 못했다. 장관에게서 예상보다 많은 약속을 받아낸 동시에, 그의 제한된 권한과 문제의식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첫 행동과는 다른 경로를 찾아 나설 숙제마저 얻게 되었다.

우선 조명래 장관은 정부가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향후 온실가스 넷 제로(탄소 중립, 실질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를 실현해야 하며(연도는 확정하지 않았다) 올해에 기후정책 대전환을 위한 모멘텀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정책을 구체화하고자 '기후행동본부'와 '탄소중립 전문가 자문회의'를 구성하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그동안 넷 제로를 위한 전담 부서나 기술적 근거가 없었다는 점에서, 위 결정은 장관의 현실적인 대응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장관이 본인의 역할을 스스로 좁힌다는 인상이 남았다. 그는 환경부에 주어진 권한이 제한적이고, 다른 부처가 협조해야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필자는 행사장에서 그가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하면서도 막막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우리는 환경부를 비판하기에 앞서 제도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역대 장관들은 전문성이 떨어져도 "내어주는 자리"에 앉는 경우가 흔했다. 환경부의 위상이 낮은 것과 마찬가지로, 온실가스 배출을 실제로 통제할 힘은 기업이나 다른 부처에게 있다. 우리는 앞으로 이런 문제를 분명하게 지적하며 정부에 제도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그럼에도 환경부 장관은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한국에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변화를 촉구하기 가장 적합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부처 내부에서 할 수 있었던 연구와 조직 개편도 실제로 이뤄진 것보다 많았으리라.

새로운 청년 기후 운동


정부가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 말고도 문제의식이 있었다. 바로 사회에서 청년들이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청년들은 전문성과 뚜렷한 가치관을 갖췄더라도, 공식 의사결정에 기성세대만한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다른 것보다 기득권이 이들을 가르칠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우려한 상황은 행사에서 그대로 일어났다. 질의응답 시간으로 주어진 40분은 대부분 강의와 "전문가 발언"으로 지나갔다. 진행자는 단 11분이 남은 시점에 질문을 받기 시작했고, 우리는 시간을 연장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결국에는 여러 사람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졌지만, 주최 측이 소통할 생각조차 없다는 것이 드러난 다음이었다. 행사를 마친 우리는 오히려 목적 의식이 뚜렷해졌다.

기후 운동에서 청년들은 왜 별개 단위를 구성하려 하는가? 청소년들이 집단 결석시위를 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우리는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가장 오래 감당할 세대로서, 사회가 내리는 결정을 함께 설계할 권리가 있다. 또한 산업전환의 부담을 '공정'하게 나누자고 가장 절박하게 요구하는 이들이 청소년과 청년들이다. 그 방법은 연간 7억 톤이 넘는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을 지금부터 과감하게 줄여, 30년 안에 넷 제로를 실현하는 것이 유일하다.

이제 개인의 노력으로는 정책을 제때 바꿀 수 없다. 기후위기 시대에 같은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목소리를 내야만 사회가 반응할 것이다. 이들은 다수의 행동이 만드는 힘으로 나아가면서, 기업과 정부에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 하지만 첫 행동에서 보았듯이 저 방식에 누구나 동의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꿈꾸는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렇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겠다. 이날은 한 행사의 끝이었지만, 앞으로 거대해질 운동의 시작이었으니까.
#기후위기 #환경부 #공룡 #청년 #조명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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