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3일 한베평화재단 회원들과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 웅우예티탄씨 두 명(동명이인, 오른쪽 두번째, 세번째)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베트남전 종전 43주년 기념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마이크를 잡고 있는 인물이 임재성 변호사.
이희훈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중부 꽝남성 퐁니·퐁넛마을이 불탔다. 74명이 죽었다. 모두 민간인이었다. 당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는 은밀하게 조사를 진행, 학살을 자행한 청룡부대 1중대 1~3소대장 세 명을 1969년 11월경 신문했다.
2017년 8월 2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TF'는 국정원에 세 소대장을 조사해 작성한 문서와 목록 등을 공개하라고 청구했다. 국정원이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거부하자 민변 TF는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고, 2018년 말 승소판결이 확정된다. 하지만 국정원은 소대장들의 개인정보 침해를 내세워 또 비공개한다. 민변 TF는 2019년 다시 한 번 법원에 소장을 낸다.
지난 3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박형순)는 국정원의 비공개가 위법하다며 세 소대장을 조사해 작성한 문서들의 목록을 공개하라고 했다. 재판부는 소대장들의 생년월일 내지 출생연도 부분을 제외한 부분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 정한 비공개 대상 정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소송에 참여한 임재성 변호사는 3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한국 사회의 성숙함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문제를 온전하게 인정하고, 어떻게 해결하는지로 만들어질 것"이라며 정보공개는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몰랐던 문제
- 이번 소송이 어떤 계기로 진행됐는지 궁금하다.
"한국이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사건을 처음 주목한 게 1999년 <한겨레21> 피해자 인터뷰였다. 하지만 당시 사회가 받은 충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5년 피해자가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하고 나서야 민변에서도 '모두가 다 알고 있지만, 모두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문제'라는 걸 인식했다. 사법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볼 수 있을까 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정보공개청구다.
저는 사실 (청구 결과) '정보 부존재'라고 나올 줄 알았다. 이미 고경태 한겨레 기자가 여러 경로로 '자료 존재 여부만 확인해달라'고 했는데, 매번 국정원은 '없다'고 회신했다. 그래도 한 번 해보자 했는데 비공개가 나왔다. 자료가 있다는 뜻이다. 2017년 1차 소송 때는 (관련 정보의) 내용과 목록을 더 넓게 청구했는데 정보의 내용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각하가 나왔다. 일단 (세 소대장 조사 문건) 목록부터 받으려고 (2차 소송을 시작)했는데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 한국 정부는 소송 과정에서 어떤 태도를 보였나.
"국가가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국정원이 언급했던 것 중 하나가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확인도 부인도 안 함)다. 굉장히 중요한 외교 전략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나 일제강제동원 피해문제에는 그렇게 안 하지 않나. 외교의 문제이기 전에 인권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작 이 문제에서 한국 정부는 '피해자가 존재하지만 베트남 정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먼저 정보를 공개하거나 입장을 낼 수 없다'라고 나왔다. 더 나아가 '하나의 정보가 열리면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정보를 확인해달라고 할지 모른다, 구멍이 뚫리면 둑이 무너진다'는 식이어서 좀 치사해 보였다."
- 베트남전에 깊숙이 개입한 미국과도 비교해봤을 것 같은데, 한국과 차이가 있던가.
"미국도 보수적이다. 미라이 학살(1968년 3월 16일 미국 23보병사단이 베트남 중부 미라이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사건. 베트남 정부가 추산한 피해자는 504명, 미군 공식 통계는 347명에 달한다 - 기자 주) 하나는 박물관도 짓고 피해마을에 지원도 했지만, 개별 피해자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베트남 정부다. 북베트남 정규군의 민간인 학살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 이슈화를 원하지 않는다. 한국에 있는 베트남 관계자들도 만나봤는데 '과거 얘기다, 결혼이주여성문제나 신경쓰라'고들 하더라."
베트남조차... "결혼이주여성문제나 신경쓰라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