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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으로 떠난 명상 여행, 끝나자마자 내가 간 곳

[더 늦기 전에 명상 여행] 태국 칸차나부리 주 '담마 칸카나 위빠사나 센터' ②

등록 2020.02.25 22:12수정 2020.02.2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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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기사] 유발 하라리가 극찬한 명상 10일 과정, 직접 해보니 (http://omn.kr/1k8xk)

이전 글에 이곳을 소개하며 고요한 숲속의 리조트 같다고 표현했는데, 하루 대부분을 지내는 메인 명상홀에 앉아 있노라면 영상이 없는 흰 스크린의 극장 같다.


백석은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며  자신의 심경을 반조해 놓았다.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다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 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메인다."

낯설고 먼 이국 땅 명상 센터에서 착실하게 묵언하고 좌선하며 일주일을 보내노라니, 내 마음의 하얀 스크린에도 오감이 총 동원돼 가장 갈애하는 것이 드러났다. 그것은 부귀도 영화도 아닌 청도의 단골 돼지국밥집이다.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명상 중 순식간에 공간이 이동해 그 집에 앉아 돼지국밥에 소주 한잔 걸치는 영상이 영적 계시처럼 오고 간 것.
   
유발 하라리는 영국에서 유학 중이던 20대 때 고엔카가 지도하는 10일 코스 위빠사나 명상을 처음 접했다.

"(명상 수련을 하며) 내가 숨 쉬는 것을 관찰하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전까지 내가 읽었던 모든 책과 대학 시절 참석했던 모든 수업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정신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몰랐으며 그것을 통제할 능력도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음에도 내 숨이 콧속을 드나드는 것의 실체를 관찰하다 보면 10초도 지나지 않아 정신은 흩어져 방황했다. 그것은 눈이 번뜩 뜨이는 체험이었다."
 
센터 건물 실용적이고 명상에 이롭게 지어졌다.

센터 건물 실용적이고 명상에 이롭게 지어졌다. ⓒ 손승열

 
첫 수련 과정 이후 매일 두 시간씩 명상을 시작했고 매년 한두 달간 명상 수련 휴가를 간다는 유발 하라리. 그는 명상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이다"라며 "이런 수행을 통해 얻는 집중력과 명정함이 없었다면 <사피엔스>나 <호모 데우스>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고 피력한다.

그의 책을 읽고 명상 여행을 계획한 내가 고엔카 위빠사나 10일 과정에 참여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가 가르치는 10일 코스는 초심자들이 익혀야 할 가장 기본적인 수행법이다. 첫 사흘간 진행된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은 내가 해오던 방식이라 익숙한 시간이었다.

감각을 관찰하다


넷째 날부터 시작된 위빠사나 수행인 '감각에 대한 관찰'은 처음 접해 보는 것이라 어려웠다. 이 방식은 신체의 모든 부분, 머리 끝 정수리에서부터 발가락 끝까지 마치 스캔을 하듯 부분별로 옮겨가며 피부에 느껴지는 모든 감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아홉째 날까지 이 방식을 반복 심화한다. 이 방식을 처음 시도한 날, 나는 마음의 조급함과 산만함으로 관찰이 힘겨웠다. 마치는 날 즈음에야 어줍게나마 능숙해져 호흡 명상을 할 때보다 몸의 느낌이 세밀해지고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혀져 한층 몰입되는 경험을 했다. 마치 온몸과 정신을 샤워하고 정화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남방 상좌부 전통의 명상은 사념처(四念處), 즉 몸, 느낌, 마음, 법 네가지 사띠(sati, 마음 챙김) 수행을 한다. 고엔카 선생의 10일간 가르침은 느낌에 대한 마음 챙김인 수념처(受念處)에 해당된다.

그는 감정의 기복이 없는 평정심(平精心)을 강조한다. 평정한 마음으로 자신의 감각을 관찰하면 그 감각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음(무상, 無常)을 알아차리게 된다는 뜻이다. 힘겨운 고난의 시간을 만나면 '이 또한 지나 가리라', '아닛짜(Anicca, 무상), 아닛짜' 하고 되뇌라고 알려줬다. 
 
코스를 무사히 마치고 해냈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이곳을 떠난다.

코스를 무사히 마치고 해냈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이곳을 떠난다. ⓒ 손승열

 
고요한 숲속 극장에서 마음 속 평화를 찿아 이리저리 헤메다 평화의 'ㅍ'자도 보지 못한 채 10일이 흘렀다. 참가자 대부분은 방콕행 전세 버스를 탔고 나는 몇 명의 태국인들과 칸차나부리행 미니버스를 타고 나왔다. 버스가 휴게소에 들르자 일행들은 그동안 센터에서 못 먹은 군것질 거리를 사서 먹은 뒤 행복하게 웃으며 내게도 맛을 보라며 나누어 주었다.

동석한 동갑내기 남자는 쾌활하고 농담을 좋아했다. 초대형 커피를 사들고 와 한 모금 마시더니 살았다는 듯 안도의 미소를 띄우며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족들 떠나 홀로 산 지 20년째다. 몇 년 전 번아웃(Bur-out)을 겪었다. 정말 열심히 일만 하고 산 거다. 극도의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시달려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담당 의사의 추천으로 명상 코스를 접했고 매년 참가하고 있다. 아마존(태국 대표 커피 브랜드)이 내 기분을 업 시켜주는 명약이라면 고엔카는 내 마음을 안정시키고 삶의 조화를 찾게 해준 명의다." 
 
칸차나부리 강변 전망 좋은 카페들이 많다.

칸차나부리 강변 전망 좋은 카페들이 많다. ⓒ 손승열

  
삼겹살과 소주가 이렇게나 맛있었다니

여행자 거리 초입에 한국 식당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꿈에 그리던 돼지국밥은 없다. 대신 삼겹살과 소주를 이틀 식비와 맞먹는 거금 400바트를 투자해 주문했다. 상추에 고기 두 점, 마늘, 쌈장을 찍은 고추를 얹어 쌈을 완성한 뒤 소주를 한잔 걸치려니 손이 다 떨렸다.

소주를 마시고 카! 외친 뒤 쌈을 입안 가득 넣고 씹었다. 으음, 으음, 우아! 행복감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명상할 때 그토록 집중이 안 되더니 삼겹살과 소주가 들어가자 하나 하나 관찰이 되고 완전히 몰입이 이루어졌다(명상을 한 덕분일 수도). 어찌나 맛있게 먹었는지 삼겹살 한 판과 소주 한 병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칸차나부리 UN군 묘지 전쟁의 참혹함을 일깨운다.

칸차나부리 UN군 묘지 전쟁의 참혹함을 일깨운다. ⓒ 손승열

 
칸차나부리를 찾는 여행자라면 한번쯤은 UN군 묘지에 들려 추모하는 시간을 가진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 나왔던 '죽음의 철도' 공사에 동원된 후 사망한 전쟁포로 중 7000여 구의 유해가 안치된 곳이다. 대부분 20, 30대 초반에 생을 마감한 젊은 영혼들의 묘비를 읽고 있노라면 나와 대면 한 적도 없는 사람들인데 가슴이 먹먹해진다.

콰이강의 다리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다'라는 주인공의 대사가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모두 다 죽는다. 메멘토모리(Mementomori),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격언처럼 나 또한 언젠가 죽는다는,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묘지를 둘러보며 되새기게 됐다.  

명상은 무지(無知)에서 지혜(智慧)로 나아가는 길이다. 번뇌 망상이 일어날 때 알아차리지 못하면 무지이고 알아차리면 지혜다. 두군데 명상센터에서 만난 태국, 외국인 명상가들이 힘겨운 명상 수련을 하는 것은 행복의 높은 차원인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지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때 찾아든다. '조그만 희망도 다 버린 자만이 행복하다'는 인도 속담처럼 바라는 것이 없을 때 마음은 비로소 평화롭고 고요해지는 참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한국 선가의 큰 스승이셨던 전강 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자기 자신의 마음을 찾는 법이 참선(명상)이다. 이 법은 가장 쉬운 일이지만 모양도 없고 빛깔도 없는 것이기에 어리석은 자는 믿지를 못한다. 믿지 못하는 자는 어쩔 수 없이 상견법(相見法, 일체의 형상이 있다고 보는 것)에 처박혀서 죄(罪)만 짓지 별도리가 없다. 깨닫지 못했으니 망(妄)이지, 깨달으면 그놈이 각(覺)이다."

*고엔카 선생의 가르침이 궁금하신 분은 김영사에서 펴낸 <고엔카의 위빳사나 10일 코스>와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을 읽어 보시길.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는 곳은 한국에도 한 곳이 있다. 전북 진안에 있는 '위빳사나 명상센터 담마코리아'(korea.dhamma.org)에서 10일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한두 달 전에 온라인으로 미리 신청해야 한다.
#명상 여행 #태국 #칸차나부리 #칸카나 담마 위빠사나 센터 #고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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