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대 총학생회 해외장학연수
황법량
호남대 총학생회 자료에선 '해외장학연수'라는 항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의 매년 연말이나 연초에 새롭게 임기를 시작하는 학생회 간부들이 참여한 해외연수다. 여행지는 오사카, 후쿠오카, 방콕, 파타야 등이었다. 학생회 간부 1인당 25~30만 원을 부담하고 교비회계에서 1700~3400만 원을 지원받은 사업이었다. 2016년에도 조선대 총학생회의 해외탐방 용역입찰 공고가 게시되었다가 학생들의 큰 비판을 받고 사업 자체가 취소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도 호남대 총학생회는 버젓이 이런 사업을 실시했던 것이다.
해외연수 자체는 오히려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독일이나 북유럽의 교육제도를 견학하고 세계 각지의 학생자치·학생운동과 교류한다면 학생자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국제적인 학생자치 연대를 조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이런 방식의 해외연수라고 할지라도 학생사회의 합의와 철저한 연수계획 보고가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의 해외연수는 그저 보상여행일 뿐이다. 해외연수뿐만 아니라 학생회 간부수련회 자체가 그렇다. 부끄럽게도 나 또한 2019년 총학생회장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는 동안 그런 간부수련회를 집행했었다. 공동체에 대한 고민과 붕괴해가는 학생자치에 대한 최소한의 논의를 만들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그것은 등록금으로 대관한 수련시설에서 학생회비로 술 먹고 노는 행사였을 뿐이었다. 대표자 역할을 자처한 사람들이 겪는 고충을 공유하는 정도만 해도 의미 있는 행사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행사로 만들지 못했다.
3년간의 학생회 활동과 4개 대학 총학생회 지원금 결산을 분석하며 학생자치 활동에 주어져야 할 정당한 보상이란 무엇인지 고민했다. 나는 학생회 간부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그 대답의 단초라고 생각한다. 노동계급의 대표자가 의회에 진출하면서 무보수 명예직이었던 의원에게 월급을 지급하라는 운동이 전개되었던 것이 민주주의의 역사이다. 대표자에게 노동의 대가를 주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를 부유한 자들의 것으로 만들려는 음모이거나 스스로 통치자가 될 생각이 없고 평생 타인의 지배를 받으며 살겠다는 노예의식이다.
지금의 학생자치는 기형적인 보상체계를 가지고 있고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주의가 확대되어감에 따라 그마저도 붕괴하고 있다. 보상만으로 학생자치를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보상에 대한 논의 없이도 개혁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학생자치는 교육정책과 대학운영에 집중할 수 있으면서 간부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주어지는 체제여야 한다.
학벌 vs. 시민
현재의 총학생회 중심 학생자치는 청산되어야 한다. 개별 활동가들의 헌신과 업적은 훌륭한 것이지만 교육정책과 무관한 사업 위주의 관성과 친목 중심의 조직 질서가 문제다. 이러한 경향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총학생회와의 충돌은 피하기 어렵다. 사학재단, 교수집단, 관료집단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학생사회 내부의 군기 문화와 폐쇄적인 친목집단이 지배하는 대학에서 '시민'이라는 정체성은 끊임없이 불화를 일으킬 것이다.
2020년대 학생자치 갈등은 운동권 대 비운동권의 구도가 아니라 학벌 공동체의 학우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학생시민이 될 것인가를 기준으로 전개될 것이다.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나 나는 대학생들이 그럴 역량을 충분히 갖추었고 갖추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학생자치가 대학 운영에 참여할 주체성을 갖는 일이다. 제도로만 보자면 등록금 심의위, 재정위, 대학 평의원회 등 학생이 대학 운영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는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그런 제도가 있어도 대학은 대부분 사학재단과 대학 교직원들이 수립한 계획으로 운영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새로운 시민의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고 그것을 확장시켜나갈 운동이 필요하다.
나는 광주지역 4개 대학 총학생회 지원금을 시작으로 전국의 대학 총학생회 지원금, 총장 및 학장 업무추진비 등 대학재정감시의 영역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또한 전국의 모든 학생운동 단위에 대학재정감시 운동을 제안하고 설득할 것이다. 이를 통해 친목 중심의 총학생회 인맥과 구별되는 시민들의 연합을 조직하고 학생사회의 대학 운영 및 교육정책 참여를 확대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