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거리> 내지그림2물 길러 가는 순자를 분이가 부르는 장면
그림책공작소
큰아버지의 호통 소리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순자가 다시 물을 길으러 나가는 것을 보던 날, 분이는 보다 못해 순자에게 말을 겁니다.
"내가 물 좋은 약수터 아는데 같이 갈래?"
늘 혼자이고, 늘 일 만해야 하는 순자를 보다 못해, 아픈 순자를 낫게 해주고 싶어 하는 분이의 안타까운 심정이 고스란히 보입니다. 얼굴만큼 마음도 참 맑고 고운 아이입니다.
분이는 순자와 함께 약수터에 가서 물할머니에게 순자의 몸이 낫게 해달라고 빕니다. 하지만 정작 순자는 자기를 죽게 해달라고 빌지요. 참말로 죽고 싶다고 덤덤하게 말하는 순자를 보며 분이는 어쩔 줄을 모릅니다. 얼마나 힘들었기에 죽고 싶어했을까요? 순자의 살아있는 날들은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나 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통 속에서 순자는 그렇게 삶을 놓아버리고 싶어했습니다.
분이는 순자가 죽고 싶어하는 것을 알게 되자 다른 동무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동무들은 모두 마음을 모아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순자의 하루거리를 낳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하루거리는 뱀이 물어간다고 젖은 수건을 순자의 목덜미에 던지고, 고약한 병은 고약하게 맞서야 한다고 뒷간에서 달걀을 먹게 하고, 순자에게 도둑이 들었다고 순자 머리에 새끼줄을 씌우고 냄비를 퉁탕퉁탕 두들기며 도둑을 냄비에 가둔다고도 합니다. 동무들이 일을 벌일 때마다 순자는 나은 듯하다가 다음날이면 다시 아프고 맙니다.
도무지 방법이 없자 동무들은 다른 생각을 해냅니다. 순자가 참말로 죽고 싶은지 알기 위해 먹으면 죽을 수 있는 약을 만듭니다. 그리고 순자를 불러 말합니다.
"순자야! 이거 기수가 약방에서 구했나 봐!"
"이거 먹으면 정말 죽는 거야."
"순자 너, 그렇게 못 살겠다면 죽어야지 어떡하니?"
"맞아, 그냥 한입에 넣고 꾹 삼켜!"
순자는 한참 망설이다가 약을 받아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러고는. 가만히 방에 눕습니다. 물 한 사발에 약을 삼키구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만 살고 싶을 만큼 힘들었을 어린 순자의 고통스러운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시려옵니다.
그런데 이튿날 순자가 동무들에게 잘름잘름 다가옵니다.
"야야, 너희들이 준 약 먹었는데... 안 죽어."
"어머, 순자 너 몸이 튼튼한가 보다."
"그거 먹으면 다 죽는데, 너만 안 죽는다 야."
"우와, 순자 참말로 오래 살려나 보다!"
"다행이지 뭐야. 너 죽었으면 우린 어쩔 뻔했니?"
그날 순자는 동무들과 함께 처음으로 해가 저물도록 놉니다. 멍석에 누워 별똥도 봅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하루거리는 별똥처럼 뚝 떨어집니다. 게다가 이제 순자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