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원대 뇌물 혐의, 성접대 혐의와 관련해 1심 무죄를 선고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019년 11월 22일 오후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석방되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5월, 고 장자연씨에 대한 강제추행죄로 기소된 조선일보 전 기자 조아무개씨가 무죄를 선고 받았다. 2009년 사건 당시, 장자연씨에 대한 강제추행 및 접대 강요행위에 대해 검찰은 사건의 핵심증인의 일관적인 사건 진술에도 불구하고 불기소 처분했다. 이후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검찰에 재수사를 권고했고, 조씨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해당 술집은 종업원이 수시로 드나들고 공개된 장소였다", "성추행이 있었으면 생일파티 분위기는 안 좋았을 것" 이라는 납득 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무죄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2019년 11월, 김학의 전 차관, 윤중천에 의한 성폭력 사건 1심 선고에서 재판부는 강간치상으로 기소된 윤중천에게 면소 및 공소기각을 선고, 뇌물수수죄로 기소된 김학의 전 차관에게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윤중천은 별장에서 김학의에게 여성을 이용해 '접대'하였고, 그 별장에서 여성은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의혹이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성폭력 피해를 폭력으로 보지 않고 '뇌물죄'로 기소하였고, 법원은 그마저도 면죄부를 주었다. 그런데 '접대문화'는 지위나 권세를 가진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회사에서는 회식이 끝나면 늘 남자직원들끼리 룸살롱을 간다. 승진 정보, 회사의 생태계 이야기, 업무시간에 차마 공유 받지 못한 정보 들은 그 자리의 참석한 남성들에게만 공유 되며, 남성 직원들끼리 화합과 의리를 다진다. –'함께 쓰는 성폭력 사전' 온라인 말 모으기 내용 인용.
남자친구가 군대에 입대하자마자, 일종의 '관례'라며 군대 선임들과 함께 외박을 나가 성매매 업소에 다녀왔다는 것을 알았다.(중략)군대 가서 성매매 안 해본 남자가 없다고 말했고, 군대에선 성욕을 풀 수 없으니, 가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말했다. –'함께 쓰는 성폭력 사전' 온라인 말 모으기 내용 인용.
군대에서 선임/동기와 함께 성매매 업소에 가는 관례와 회사에서 의전이나 친목의 이름으로 룸살롱/안마방에 가는 문화, 위 문화와 관례라는 이름 뒤에서는 성폭력이 이루어지고, 끊임없이 성착취가 일어난다. 이렇듯 여성을 차별하거나, 또 다른 여성을 매개하여 착취하는 방식으로 남성카르텔은 공고해 진다.
공기처럼 스며든 미디어 속 강간문화
놀이나 관례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갔던 일상의 폭력들은 다시 재생산되어 미디어에서 아무문제 없이 나온다.
"드라마 쌈마이웨이 2화에서 여주인공을 두고, 대학 남자 동기들이 자기 차에 태우면 100만원, 호텔에 데려가면 200만원을 걸고 내기하는 장면을 보고 경악 했다." –'함께 쓰는 성폭력 사전' 온라인 말 모으기 내용 인용.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남이 밀폐된 공간에 있으면 당연히 여성은 섹스에 동의했다 전제하고, 상대 의사를 묻지 않고 스킨십을 하는 장면들을 많이 보았다. 그리고 이것을 로맨틱한 장면처럼 묘사하곤 한다." –'함께 쓰는 성폭력 사전' 온라인 말 모으기 내용 인용.
미디어 안에서의 이런 여성혐오, 폭력, 강간문화의 장면들은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어, 내용상 자연스러운 맥락에 기반 한 서사인 듯 그려져 문제의식을 갖기 힘들게 만든다. 하지만 이 불편한 장면들은 일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강간문화'의 산물이며, 뿌리 뽑지 못한 강간문화들이 게임, 광고, TV, 드라마, 유튜브 등의 미디어 장면에서 그대로 가져와 소비되는 것이다.
"게임을 할 때도, '캐릭터가 죽는다', '몬스터를 죽인다'라는 말 대신에도 '강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1:1로 대결하다 지면 '강간당했어?' 라고 말하거나, '강간 해버린다' 라고 한다. 상대방의 캐릭터가 '여자'로 보이는 경우이거나, 상대 플레이어의 성별을 몰라도 비하하는 목적으로 쓴다." –'함께 쓰는 성폭력 사전' 온라인 말 모으기 내용 중.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 곳곳에서 스며들어 있는 강간문화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당신이 즐기고 있는 '그것', 놀이가 아니라 '강간문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