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대 대통령 취임을 경축하고자 남산공원에 이승만의 동상을 세우고 있다. 이 동상은 4.19 때 쇠사슬에 묶여 종로로, 을지로로 끌려다녔다(1956. 8.).
국가기록원
[기사 재수정 : 30일 오후 5시 53분]
'피의 화요일' 종말
1960년 4월 28일, 이승만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경무대에서 이화장으로 이사했다. 그날 새벽, 경무대 별관에서 자유당 2인자 이기붕 일가족은 권총으로 자살했다. 이로써 1960년 4월 19일 '피의 화요일'은 마침내 그 막을 내렸다. 당시 동아일보 보도이다.
이기붕 씨 일가 권총 자살
- 28일 새벽 경무대에서 장남 강석 군이 차례로 쏘아. 자결 결의는 이틀 전부터.
이강석군 "죽음으로 사죄하자"고 주장. 소식 듣자 거리엔 측은의 빛도 -
지난 (4월) 25일 밤 이래 행방을 감추고 있던 전 민의원 의장 이기붕(65) 씨는 28일 상오 5시 45분 경무대 별관 경비실 옆에 있는 대통령 여비서 이00 씨 집(관사 36호)에서 부인 박 마리아(55) 여사와 강석(24; 이 박사 양자), 차남 강욱(21) 등 가족 3명과 함께 권총 자살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자세한 자실 경위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나 장남인 강석 군이 자기의 권총으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을 사살한 다음, 자기를 쏘아 함께 죽은 것으로 전해졌다. - 1960 . 4. 29. 동아일보
몇 해 전, 나는 한 재미동포로부터 사진 파일 한 장면을 전송 받았다. 뜻밖에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아들인 이태산 묘지 사진이었다. 이승만은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박승선이란 여인과 결혼하여 아들을 두었다. 이승만은 미국으로 갈 때 그 아들만은 데리고 갔다.
하지만 그 아들은 미국으로 건너 간 뒤 곧 장티푸스에 걸려 필라델피아 시립병원에서 병사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시신은 필라델피아의 한 공원묘지에 안장됐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