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 전국 3대시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대구서문시장의 입구 야경
정만진
몇 날 있으면 설이다. 근래 들어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설은 여전히 우리 겨레 최대의 명절이다. 예전에는 설이 다가오면 많은 사람들이 장에 갔다. 설빔도 장만하고 제수용품도 샀다. 이때 장은 요즘 말로 시장이다.
시장(市場)은 시(市)와 장(場)이 결합된 말이다. 시는 상설 판매장, 즉 상가 건물들이 늘어선 곳이고, 장은 가게들 사이의 너른 마당이다. 그 마당을 장마당이라 불렀는데, 5일장·7일장 같은 장이 서는 마당이라는 뜻이다. 장마당을 줄이면 장터가 된다. 시터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상가 건물이 상존하는 까닭이다.
시장은 상가 건물들과 장터 모두를 가리키는 말
요즘은 시라면 인구 5만 이상의 도시를 지칭하고, 읍(邑)은 군청이 있거나 인구 2만 이상의 작은 도시를 가리킨다. 고대 중국에서는 우물이 넷 이상 있는 곳을 읍이라 했다. 아득한 옛날에도 읍은 사람들이 제법 모여 살지만 현대의 시보다는 작은 고을을 가리켰던 셈이다. 옛날에는 시라는 행정 단위가 없었으니 대구읍성·청도읍성처럼 읍이 붙은 지명을 가진 고을은 그리 큰 도시는 아니었다고 보면 되겠다.
시는 단군신화에도 등장한다.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하늘에서 3천 무리를 이끌고 지상으로 내려와 정착했는데 그곳을 신시(神市)라 했다. 머나 먼 상고 시대에 최소한 3천 명 이상이 한 곳에 거주했으니 읍 정도가 아니라 도시 수준이었다고 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읍은 시보다 인구가 적은 곳
영어에서는 시를 시티(city)라 한다. 시와 시티는 발음이 거의 같다. 한자어 시에 해당되는 우리 고유어는 마실이다. 마을을 뜻하는 마실에도 '시'가 들어 있다. 우리말 어머니와 영어 마더(mother), 한자어 모(母)가 모두 발음이 닮았다. 언어의 자의성이 낳은 결과이다. 어떤 사물이 특정 이름을 가지게 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고 그저 우연이 작동한다는 말이다.
그래도 시장의 시와 city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시는 마켓(market)의 성격이 강하다. 즉 서문시장은 대구읍성의 서문 밖에 있는 마켓이라는 뜻이다. 대구읍성의 서문인 달서문은 서문로와 서성로가 만나는 지점에 있었다. 서문시장이 요즘처럼 대신동에 있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