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 전에 찍은 개화파 사진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서광범, 세 번째가 민영익이다. 네 번째 어린이는 박용화다. 앞줄 왼쪽에서 첫 번째가 홍영식이다. 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유길준이다. 한 자리에 모여 사진을 찍었지만 급진 개화파는 갑신정변을 통해 민영익을 비롯한 민씨 정권에 칼끝을 겨눴다.
국사편찬위원회
정부는 외군을 불러왔을 때 생기게 될 여러가지 상황전개를 헤아리지 않고 이번에도 청국에 병력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1882년 (고종 19) 구식군대가 임오병란을 일으켰을 때 민씨 정권은 청국군을 끌어들여 이를 진압시키고, 1884년 (고종 21) 개화당이 이른바 갑신정변을 일으켰을 때에도 원세개의 청국군을 출동시켜 이를 진압하였다. 두 차례의 출병으로 청국의 내정간섭이 더욱 심해졌음은 물론이다.
민영준은 고종의 재가를 받고 당시 서울에 체류 중이던 원세개를 찾아가 원병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청국에 보낸 국서의 내용이 또한 비굴하고 치졸하기 그지 없었다. 자기나라 지역과 주민을 폄훼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