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
들녘
처음엔 책 한 권,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문장 하나에 매력을 느껴 일상을 떠나는 주인공의 모습이 멋져보였습니다. 책을 쓴 이를 만나서 그가 저자와 저자의 삶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주인공이 책의 저자의 삶을 추적하는 여정에서 만나는 인물들 하나하나에 제 자신을 이입해보게 됩니다.
그레고리우스의 여정은 기본적으로 책의 저자 아마데우 프라두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아마데우 프라두와 관련되어 있는 인물들을 찾아가며 그에 대해 알아갑니다. 그와 동시에 그레고리우스 본인의 인생 여정도 함께 돌아보게 됩니다. 이런 지점들에서 소설은 독자를 자신, 자신과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이끕니다.
소설 속에 소개되는 또 하나의 책을 쓴 저자 아마데우 이나시오 드 알메이다 프라두. 어린 시절부터 무척 똑똑했던 사람. 포르투갈 독재 시대 판사로 일했던 아버지 아래서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의사가 된 그. 그가 마주한 중요한 선택의 순간. 독재에 충실히 부역하던 경찰 간부 멩지스가 심각한 부상을 당해 그의 앞에 놓였을 때 그가 했던 고민과 선택. 그로 인해 펼쳐지는 복잡한 삶.
"그러니 사실은 내가 날 위해 그 일을 한 건가? 내가 훌륭한 의사요 증오를 억누를 수 있는 힘을 지닌 용감한 인간임을 나 스스로에게 보이기 위해? 승리를 거둔 극기를 칭찬하고 자기 통제의 기쁨을 즐기기 위해? 그러니까 도덕적인 허영심, 아니 그것보다 더 나쁜 지극히 일상적인 허영심에서?"(249)
"당신 기분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건 정말 하찮은 거니까. 하지만 멩지스가 건강해져서 제복을 다시 입고, 살해 명령을 계속 내린다고 생각해봐요. 아주 자세하게 상상해보라고요. 자, 이제 자기 자신을 판단해보시죠."(252)
이런 상황이라면 과연 저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소설은 저를 다양한 삶의 상황으로 이끕니다. 소설에는 중심 인물인 프라두의 인생 뿐만 아니라 그와 엮여 있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어린 시절 죽을 뻔한 자신을 살려준 오빠에게 강박적인 사랑을 품고 살아온 여동생 아드리아나, 아마데우 프라두가 독재에 저항하는 운동에 참여하면서 만났던 동료들, 그의 오랜 친구, 그가 사랑했던 여인...
소설을 읽어가면서 만나는 등장인물들 하나하나의 인생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평범해 보이지만 그 속을 알고나면 모두가 특별한 인생입니다. 스쳐가는 모든 인생들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등장 인물 하나 하나의 삶과 선택의 순간들에 나를 이입해 생각하기에 딱 좋은 소설입니다. 이런 상상들은 아마도 제가 살아갈 인생에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와 더해 이 소설의 매력이 또 있습니다. 아마데우 프라두라는 소설 속에서 창조된 작가의 인상깊은 문장들입니다.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쓴 페터 비에리는 소설 속에서 제3의 작가가 되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독자들에게 선사합니다. 소위 문장 수집가들에게는 보물과 같은 책이 될 것입니다.
"소리 없는 우아함. 익숙한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이 격렬한 내적 동요를 동반하는 요란하고 시끄러운 드라마일 것이라는 생각은 오류다."(55쪽)
"이미 지나온, 그래서 과거가 되어버린 미래를 겪은 사람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돌이키기 위해 옛날로 돌아가길 원한다. 지나온 시간이 괴롭지 않은 사람도 돌아가려고 할까?"(77쪽)
"우리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다. 잔인함과 자비심과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으로 가득한 감독."(116쪽)
"글을 쓰지 않으면 사람은 결코 깨어 있다고 할 수 없어. 자기가 누구인지 알지 못해. 자기가 어떤 사람이 아닌지는 더욱 알지 못하고."(141쪽)
"호기심과 질문, 의혹과 논거, 생각하는 즐거움 없이 우리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218쪽)
"현재에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부여하는 것은 죽음이다. 시간은 죽음을 통해서만 살아 있는 시간이 된다."(220쪽)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570쪽)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들녘,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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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발저, 호수와 바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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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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