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박물관 입구이른 아침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높은 성채처럼 보이는 벽이 로마와 바티칸의 국경이다.
서부원
로마에서 바티칸에 '입국'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입장권을 끊고 바티칸 박물관에 찾아가는 것과 로마 도심을 향해 트인 성 베드로 광장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현재 두 경로는 연결이 되어 있지 않아, 두 곳 모두 보려면 박물관을 관람한 뒤 다시 '국경'을 넘어 '재입국'해야 한다.
바티칸의 중심은 성 베드로 성당과 광장일 테지만, 그것만으로 바티칸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바티칸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숱한 보물들이 죄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 베드로 성당은 무료인 데 반해, 박물관 입장료가 만만치 않은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박물관 입구는 이른 아침부터 인산인해다. 지하철 역 근처에서부터 호객 행위를 하는 상인들로 북적이고, 아직 입구까지는 멀었는데도 입장권을 예약했는지를 사전 확인하는 직원까지 줄을 섰다. 삼엄한 경비 속 박물관은 바티칸의 출입국 관리소고, 입장권은 여권인 셈이다.
입장권을 예약할 때는 방문 시간을 정하게 되어 있지만, 막상 와서 보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매표소든, 무인 발권기든 출력한 바우처만 있으면 즉시 입장권으로 교환되었다. 깃발을 따라 움직이는 단체 관광객들과 개별 여행자들이 엉키면서 입구는 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사실 방문객들에게 시간 예약을 요구하는 것은 관람 인원을 제한하고 적절히 분산시키기 위한 취지다.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몰리게 되면 관람에 방해가 되는 건 물론이고, 유물 관리의 어려움과 안전사고의 위험까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엄숙해야 할 종교적 성지임에랴.
박물관에는 조토와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카라바조, 미켈란젤로, 로댕 등 이름만 들어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거장들의 작품이 즐비하다. 주마간산 격으로 훑어본다고 해도 한나절이 꼬박 걸릴 만큼 작품 수도 많고 규모도 크다. 오디오 가이드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으며 관람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관람을 방해하는 건 정작 작품의 양과 규모가 아니다. 바로 이곳을 찾는 어마어마한 관람객의 숫자다. 전문가들이 제대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굳이 박물관을 찾을 게 아니라, 시중에 판매되는 도록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할 정도로 관람 환경이 좋지 않다.
관람객들이 서로 작품을 가리는 건 다반사고, 카메라 셔터 소리와 단체 관광객을 인솔하는 가이드의 설명이 곳곳에서 메아리 되어 전시실을 가득 메운다. 사람들이 밀물처럼 들이닥쳤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모습은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감상'은 없고, '구경'만 있다고나 할까.
값비싼 입장료에 견줘, 관람객을 위한 박물관의 배려도 기대에 못 미친다. 무엇보다 전시실이 너무 어둡고, 설치된 조명도 각도가 맞지 않아 되레 관람을 방해하기 일쑤다. 애초 건물 자체가 박물관 용도로 설계된 것이 아닌 탓이라지만, 핑계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모름지기 걸작이란, 작가와 작품의 수준 못지않게 그것이 어느 곳에 전시되어 있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열악한 전시 공간에 방치되어 있다면, 아무리 위대한 작품이라도 그 예술적 가치를 제대로 드러낼 수 없다. 교과서 속 삽화를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