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평전 중봉과 백암봉 사이 펀펀한 땅이 하얀색으로 변했다.
정명조
중봉 전망대에서 덕유평전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시원해진다. 마음이 넓어진다. 세상을 모두 품을 수 있을 것 같다. 산행의 효과다. 덕유평전을 걷는다. 오던 길과는 다르게 바람도 없다. 손도 시리지 않고, 땀도 조금씩 난다. 야생화 탐방을 위해 지난여름에는 비를 맞으며 걸었다. 지금은 눈길을 걷고 있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한겨울 산행의 묘미를 만끽하며 걷는다. 신기하게도 머릿속을 맴돌던 복잡한 생각들이 하나씩 정리가 된다. 산행의 또 다른 효과다.
백암봉에 도착한다. 갈림길이다. 계속해서 동엽령으로 갈지, 송계사로 내려갈지, 아니면 향적봉으로 되돌아갈지를 결정한다. 갈 사람은 서둘러 가고, 남은 사람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향적봉으로 향한다.
향적봉에서 백련사를 거쳐 내려오는 길을 택했다. 눈꽃과 서리꽃에 흠뻑 취한 덕분에 내내 지루하다. 멀리 바라보는 경치도 별로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2.5km 걷다 보니 백련사에 도착한다. 신라 때 창건된 절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모든 건물이 일본식 초가로 되었다가 한국 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 1960년대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구천동 어사길
무주 구천동에 어사길이 있다. 300여 년 전 어사 박문수가 충청도를 거쳐 무주 땅 덕유산에 들어가며 걸었던 길이다. 구천동에서 백련사에 이르는 옛길을 2016년 무주군에서 복원했다. 약 5km에 이르는 산책길이다.
조선 영조 시절이었다. '박문수전'에 의하면 구씨와 천씨가 많이 살던 구천동에 유씨 성을 가진 한 가족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거짓 모함으로 유씨 가족 모두 죽기로 했다. 어사 박문수가 억울한 사연을 듣고 바로잡았다는 옛이야기가 전해 온다.
백련사부터 시작하여 거꾸로 어사길을 걸어 내려왔다. 향적봉에서 오던 가파른 내리막길과 다르게 잘 닦인 길이다. 기존에 있던 자연탐방로를 옆에 두고 계곡을 따라 아기자기한 길이 이어진다.
한참을 내려오니 커다란 바위 위로 흐르던 물줄기가 여러 개의 폭포를 이루며 떨어진다. 비파담(琵琶潭)이다. 선녀들이 구름을 타고 내려와 목욕한 뒤 비파를 뜯었다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