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이야기 1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의 종갓집이자 2020년 1월 현재 360번까지 출간한 민음사의 1번은 이윤기 선생이 번역한 <변신 이야기>가 차지했다. 무려 기원전에 쓰인 작품이다.
민음사는 500번 700번을 넘어 1000번을 달성할 수 있다는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있는 세계문학 전집의 터줏대감답게 가장 많은 발행 권수를 자랑한다. 처음부터 기원전 작품을 선택함으로써 동서고금의 좋은 작품은 다 섭렵하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민음사는 친절하게도 자사가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 그 정답을 알려주었다.
발간 21년째를 맞고 있고 모두 합쳐서 1천만 부를 판매한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는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의 1번이 <변신 이야기>인 이유는 민음사의 문학 전집의 기획 의도와 가장 잘 맞기 때문이라고 한다.
민음사가 세계문학 전집을 시작할 무렵만 해도 '그리스 로마 신화'만 주로 출간이 되었지 <변신 이야기>를 주목한 출판사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다만 야심차게 <변신 이야기>를 1번으로 밀었지만 이윤기 선생의 번역은 중역이며, 천병희 선생의 번역본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의견이 많다.
서양을 공부하자면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독교와 변신 이야기다. 이 두 개가 서양의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뿌리를 차지하며 '그리스 로마신화'의 상당 부분이 <변신 이야기>에 빚을 지고 있다. <변신 이야기>를 발굴하고 확대 보급하는 것이 세계문학 전집의 발간 취지와 부합하기 때문에 1번으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결국 민음사가 21년 전에 <변신 이야기>로 세계문학 전집의 출발을 한 것이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파격적인 출발이긴 한데 사실 이 행위가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인문학적인 행위다.
인문학이라는 것이 본디 고전을 발굴하고 널리 알리는 것이 모태가 되어 시작된 것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은 <변신 이야기>를 1번으로 선택해서 독자들의 주목을 받게 하고 더 많은 독자가 읽게 한 것은 출판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문학적인 공헌이라고 생각한다.
내친김에 민음사의 세계문학 전집에 관한 궁금증을 더 해결해 보자. 눈이 밝은 독자들은 눈치를 챘겠지만, 민음사의 세계문학 전집에서 표지 그림도 없고 심지어 뒤표지에 다른 목록에는 실려 있는 줄거리와 작품설명이 없는 유일한 책이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그 주인공이다.
이는 원저작권자인 샐린저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샐린저는 '내 책을 출간할 때는 표지에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피력했고 민음사는 원저자의 뜻을 따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유일하게 표지 그림이 없고 제목만 인쇄되어 있어서 가장 성의가 없고 예쁘지 않은 목록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목록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나도 그렇고 대부분의 독자가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하는 문제를 생각해보자. 세계문학 전집은 전집으로 한 번에 사는 것이 아니고 한 권씩 낱권으로 사야 한다는 명제 말이다. 이에 대해서 물론 낱권으로 사는 것이 좋은 방법이긴 한데 전집을 한 번에 사는 것이 나름의 장점도 있다고 하는 민음사 직원의 주장이 신선했다.
독자마다 취향이 다른데 전집으로 사두었다가 한 권씩 무작위로 꺼내서 읽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간다는 설명이다. 무수한 실패를 통해서 자신만의 독서 취향을 찾아가기 위해서 전집 구매도 나쁘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토록 우아하고 인문학적인 마케팅이라니.
을유문화사의 세계 문학 전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