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14일 오전, 당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성폭행 혐의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가운데 페미당당, 불꽃페미액션, 한국여성단체연합, 녹색당 등 여성단체 회원과 시민들이 오후 7시부터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앞에 모여 '안희정이 무죄면, 법원은 공모자다' '한국남성들은 오늘 성폭행 면허를 발부 받았다'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권우성
위력에 대한 판단이 시급히 요구되는 현실과 달리 이중 잣대는 여전하다. 소위 '갑질' 폭력의 희생이 된 직원들은 이해받고 동정 받지만, 위력 성폭력 피해자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 아니었는지, 다른 의도는 없는지 의심 받는다.
<함께사전> 집담회에서, 한 참석자는 조직 내 문제제기의 어려움을 "가해자와 싸우는 게 아니라 조직 전체와 싸워야 한다는 생각까지 해야 된다"며 "부장이면 밑에 과장, 차장, 대리까지 주르륵 '우리 부장님이 그럴 리가 없어'라며 회사 전체적으로 그렇게 돼요"라고 요약했다. 외로운, 심지어 승산마저 희박한 장기전이 되리라는 예측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사와 미성년자 학생 관계나 목사와 신도 관계가 아닌 이상 불륜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안희정은 일개 부장이 아니라 대권주자였던 거잖아요. 상사가 자신을 성적으로 이용하려고 했고 다른 동료들로부터는 배신 당했는데 밥줄을 잡힌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라고 말했더니 '아이 그거랑 그건 다르지'라는 거예요. 뭐가 다르다는 건지, 답답하더라고요."(함께사전 집담회 중)
여성들은 <함께사전>에 모임이나 학교, 직장 등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의심과 피해자를 비난하는 말을 들었던 경험, 그리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들었던 착잡함과 분노의 감정들을 남기기도 했다. 조직 구성원들이 성폭력 사건에 대해 피해자 탓을 하는 것은 위축감을 준다. '내'가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입장에 놓였을 때, 내게 적대적인 환경이 만들어지리라는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부당한 위력 남용을 멈추자… 모두에게 필요한 직면과 용기
"대단한 남성을 실각하게 하는 여성, 성적 대가로 받을 것이 있는 여성, 원하는 것이 있는 여성, 이건 피해여성을 보는 익숙한 편견임과 동시에 가부장제가 두려워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가해자들 말처럼 다른 권력으로부터 '공작'하도록 지시받아서 문제제기한 거였다면 일찍이 들통나고 사회에서 매장 당했을 텐데요."(<함께사전> 집담회 중)
사람들이 위력 성폭력 가해자에게 온정을 보내고 옹호하는 이유는 평소 덕망 있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가해를 할 이유가 없다는 편견 때문이기도 하다. "미투 당할까 두렵다"고 하고 '펜스룰'을 운운하면서 여성에 대한 근거 없는 경각심을 부추기기도 한다.
"나는 권력 없으니까"라며 권력자를 정치인, 유명 문화예술인으로 한정시키며 남의 일처럼 비판만 하는 것으로 위력은 중단되지 않는다. 직업·지위나 경력, 인적 네트워크 등 권력이 발생하지 않는 곳은 없다. 그래서 시민들과 함께 정의 내린 '위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위력이란 말 한마디 없이 눈빛이나 한숨, 몸짓으로도 행사되는, 그래서 나로 하여금 상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언어적·비언어적 표현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해서 비위에 맞게 행동하도록 하는 힘이다. 관계에서 아무 불편을 느끼고 있지 않다면 위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위력을 이용한 성폭력은 한국 사회의 조직을 운영하는 '구조'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성별, 나이, 직급, 경력, 인적 자원 등의 차이가 조직 내에서 어떤 차별과 배제의 논리로 작동하는가', 그래서 '어떤 형태의 의사소통과 친밀감의 표현, 농담 같은 사소한 일상문화를 허용하는가'와 같은 것이다.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는 2018년 7월 2일 '위력을 인지할 때 위력은 제지된다'는 제목으로 법원의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바 있다. 기자회견의 제목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위력을 인지할 때, 위력은 제지된다.'
또 사회 곳곳의 위력을 인지하고 드러낼 수 있어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이 성폭력을 처벌하는 법률로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고, 법률이 취지에 맞게 작동해야만 위력의 피해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따라서 피해자의 주변인이 응답하는 정확한 방법이란 결국 자신의 위치를 직면하고 성찰하는 것, 익숙한 편견 대신 사건을 둘러싼 구조를 보는 노력을 들이는 것,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피해자의 곁에 서는 용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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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건인데, '우리 부장님이 그럴리 없다'는 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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