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재판을 방청하기 위해 모인 "부릅단" 시민들. 2019. 6. 21. 서울중앙지법 앞, "부릅단" 2회차 오전 재판 방청 마치고.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2018년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사법농단 사태는 2019년 1월과 3월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포함해 전·현직 법관 14명을 기소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시민사회는 검찰수사가 법원의 연이은 압수수색 영장 기각으로 난항을 겪을 때부터 공정한 재판을 위한 특별재판부의 설치를 주장했다. 사법농단의 주무대는 대법원과 서울중앙지방법원 등 서울에 소재한 법원들인 만큼, 특별재판부와 같은 절차가 없다면 후임자 격 판사들이 선임자들을 재판하는 모양새가 되어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법은 법관들과 언론 등의 반대와 국회의 방조 속에 좌절되었고, 우려했던 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사법농단 재판이 시작되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사법농단 재판에 대한 최소한의 시민 감시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으로 '두눈부릅 사법농단재판 시민방청단' 사업을 준비했다. 재판부도, 피고인도, 피고인의 변호인도, 증인도 대부분 법관이거나 법관출신인 현실에서 재판이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9년 5월 29일 첫 방청일 아침, 14명의 시민이 서울중앙지법 서관 앞에 모였다. 이때부터 12월 23일까지 7개월여간, 연 누적 134명의 시민이 13차례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 모였다.
평일 아침이지만 남녀노소 다양하게 모인 시민들은 아이를 맡기거나 혹은 직접 데리고, 직장에는 휴가를 내면서까지 재판장에 모여들었다. 어떤 시민은 십여 년 전 정치팬클럽 활동을 하면서 사회참여를 활발히 했지만, 결혼 후 출산과 육아 속에서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지 못하고 살아오다가 이곳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하게 되어 좋다고 했다. 또 어떤 시민은 어린 딸아이에게 실제 재판 현장을 보여주고 싶어 데리고 왔다고 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지만, 사법농단이라는 민주공화국의 원리를 부정한 사건이 법정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 감시하겠다는 열의는 모두가 공유했다. 그렇게 '두눈부릅 재판방청단'의 방청이 시작되었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하고 자리를 박차며 일어나거나, 아무도 예상 못 한 새로운 증인이나 증거를 막판에 제시하고 판결을 드라마틱하게 바꿔버리는 그런 장면은 현실의 법정에 없다. 재판은 사실 보는 입장에서는 지루하다. 특히나 사법농단 재판은 피고인들이 조서와 증거 목록 하나하나를 현미경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검증하는 탓에 공방 없는 서증조사만 몇 시간씩 이어지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사법농단 재판을 실제로 지켜본 시민들 누구 하나 지루하다고 불평하거나 도중에 법정을 나가는 일은 없었다.
'시민소외'
다양한 이유와 배경으로 모인 시민들과 함께 지켜본 사법농단 재판 법정은 마치 연극무대와도 같았다. 일반시민들이 앉을 수 있는 방청석의 정면을 가로막고 있는 높이 1미터 정도의 나지막한 벽은 시민들을 관객으로, 그리고 그 너머의 모두를 연극배우처럼 보이게 만든다. 판사와 피고인, 변호인에 심지어 증인들까지 대부분이 전·현직 판사 선후배 관계로 엮여있었다. 대척점에 서 있는 검사들조차 우리 사회 최고의 엘리트라는 '법조인'의 울타리 안에 속한다는 점을 자각하자, 방청에 온 시민들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소외되어 관찰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양승태 등 전·현직 고위 법관들의 범죄행위만이 아니라 그들의 수족으로 일한 판사 증인들의 증언, 재판장의 진행, 검사들의 발언까지 모두를 시민들은 비판적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검찰 역시 응원의 대상이 아닌 비판의 대상이었다. 시민들은 '증인으로 출석한 판사들도 검사들이 기소해서 피고인석에 앉아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재판개입, 법관사찰, 기밀문건 유출 등을 실무적으로 진행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검찰은 실제로 조사한 법관 중 극히 일부인 14명에 대해서만 기소했다. 그리고 조사한 법관 중 66명에 대해 '비위 관여 법관'이라는 명목으로 대법원에 전달했다. 66명의 명단은 검찰과 법원 양쪽 모두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다만 법정에 증인으로 불려왔던 현직 판사들이 아마도 그 66명 중에 포함되어 있으리라고 추정될 뿐이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시민들은 법정의 '공기'가 사회의 그것과는 판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법농단이 수사되던 당시부터 대법원 및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는 법원의 영장 연속 기각에 분노한 시민들의 집회가 이어졌고, 국회에서는 법관 탄핵이 정당별로 논의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법정 내에서는 검찰이 수집한 증거가 적법한지에 대한 절차적 공방, 사법농단의 각각의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법리적 공방이 이어질 뿐, 사법농단이 얼마나 위헌적이고 위법적인지에 대한 설명은 검사들의 입에서는 들을 수 없었다.
시민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사법농단 법정
시민들은 오전 방청을 마친 후 민변 사무실로 이동해 점심을 함께 나누며 방청 소감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가장 자주 나온 이야기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감상평이었다.
대부분의 공판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눈을 지그시 감고 피고인석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재판 진행은 변호인들에게 모두 맡겨놓고 마음 편히 명상을 하는 듯했다. 변호인 측의 이의를 대부분 받아주면서 재판을 신속히 진행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 재판장의 태도,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현직 판사 증인들의 애매모호한 말투 등에 대해서도 대화가 오갔다. 시민들은 누구 하나 자신의 행위에 대해 반성하거나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모습에 답답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