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3 행사중 일부
박정우
- 지금으로부터 한 5년 전쯤, 캐릭터 아티스트들이 디즈니 공주들의 포즈를 바꾸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고요. 그 뒷이야기와 배경이 궁금합니다.
"네. 그랬습니다. 디즈니에서 중요하게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사내 전문팀을 통해서 주기적으로 통계 조사를 하는 거예요. 그 내용과 형식이 굉장히 광범위합니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사람들의 인식이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지를 파악하거든요.
5년 전 즈음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왔어요. 디즈니 공주들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는 것이었죠. 디즈니 공주들이 너무 예쁜 척만 하고, 지나치게 여성스럽고, 그야말로 '샤랄라' 공주 스타일이라는 게 그 이유였어요.
그래서 결국 캐릭터 아트 팀에서 디즈니 공주들의 포즈를 좀 더 활발하고, 역동적으로 변화시키는 대대적인 작업을 하게 되었던 것이죠. 예를 들어 신데렐라의 상징이 구두잖아요? 예전에는 그 상징적인 신발을 신고 단정한 자세로 '내 유리 구두 예쁘지?' 뭐 이런 포즈였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는 팔 한쪽 굽히고, 다리도 굽히면서 삐뚤게 선 채로, 치마를 살짝 들어요. 심지어 구두도 안 신습니다.(웃음) 그냥 한 손에 든 채로, 맨발이 보이게 바뀌게 되었죠. 이런 식으로 전반적으로 활발하고, 역동적인 느낌으로 캐릭터 변화를 주었어요."
- 전통적인 캐릭터에서 요즘(?) 캐릭터로 직접 변화시키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이 '라떼 이즈 홀스(나 때는 말이야)'라면서요? 제가 미국에 있지만 한국 뉴스, 예능, 드라마 다 챙겨봅니다. (웃음) 그런데 정말 세상이 많이 변했구나, 나 때랑은 정말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사실 캐릭터 아트나 애니메이션 분야도 새로운 기술이나 프로그램이 정말 빨리빨리 나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 때보다도 이렇게 사람들의 인식이 변했다는 게 딱 느껴질 때 더 놀라는 것 같아요.
요즘 여자아이들한테 백마 탄 왕자가 웬 말입니까. <겨울왕국>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에요. 그런 통계조사를 통해서 트렌드와 인식을 철저하게 예측하고 분석해서 만드는 겁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남자아이들이 봉제 인형 더 많이 들고 다니고요, 여자 유소년 축구팀이 얼마나 활발한지 몰라요."
디즈니에서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쯤, 디즈니 공주들의 포즈를 바꾸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이렇게 파격적인 지침이 내려온 이유는 디즈니의 소비자들, 즉 아이들의 인식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희생하고, 사랑만을 숭고하게 여기는 공주 캐릭터의 인기가 점차 시들해지고 있다. 기성세대가 좋아했던 수동적인 공주와 달리, 이제는 자신의 삶에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공주를 원한다. 그저 예쁘기만 한 공주로는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게 된 것이다.
- '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합니다' 중에서
- 디즈니 하면 저작권과 캐릭터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걸로 유명한데요?
"일단 '디즈니 이매지니어링'에만 저작권 담당 변호사가 500명입니다. 디즈니 전체 아니고요. 이 정도면 뭐 말 다 하지 않았을까요? 책 만들면서 '웃픈' 에피소드가 있었는데요, 출판사에서는 당연히 책에 제가 그린 캐릭터를 많이 넣고 싶어 했어요. 그럼 본사랑 정리를 해야 하는데, 본사에서는 일단 디즈니 파트 전체를 영어 번역해서 보내라는 겁니다. 심지어 그때 출판사 대표님이 신혼여행 중이었어요.(웃음) 그 와중에 일정 밀리면 안 된다며 거기서 어찌 어찌 번역하는 사람을 찾아서 급하게 해서 보냈습니다.
검토하더니 쓸 수 있는 이미지와 쓸 수 없는 이미지를 하나하나 지정해 줬어요. 저도 회사 다니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리고 만든 캐릭터지만 넣지 못한 것도 많아요. 정말 여러 사람이 힘들게 만든 책입니다. 사실 이런 것뿐만 아니라 라이선스 사에서 정식 허가를 받아서 디즈니 캐릭터를 제품에 사용할 때도 담당자들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아주 디테일하게 정해줍니다. 퀄리티 콘트롤을 굉장히 신경 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