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계서원강익을 비롯한 고을선비들은 정여창이 태어난 개평마을 근처에 남계서원을 세웠다.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 세워진 서원이다. 최근 남계서원, 옥산서원을 포함한 9개 서원이 묶여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김정봉
둘의 말년 행로도 비슷하다. 이언적은 1547년 을사사화의 여파로 일어난 양재역벽서사건(정미사화)으로 평안북도 강계로 유배되고 정여창은 1498년 무오사화로 함경도 종성에 유배되었다. 둘 다 유배지에서 사망하여 두 달여 만에 고향에 묻혔다. 후대의 고을선비들은 각각 함양에 남계서원과 경주 안강에 옥산서원을 세워 이들의 학문과 덕행을 기렸다.
화림동(花林洞) 계곡 군자정
정여창은 16세(1465년)에 정종의 12남 이말생의 딸, 완산 이씨와 결혼하였다. 종친의 사위가 된 것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관료로 있었고 정여창 누이도 태종의 종손인 영인군 이순에게 시집간 점을 미루어보면 정여창 집안은 함양의 재지사족에 머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함양은 뼈대 있는 고을로 안동에 비유되곤 한다. 이를 말해주듯 육십령고개 넘어 풍광 좋은 화림동계곡에 많은 정자가 세워졌다. 한때 정자가 많아 '팔담팔정'으로 불리었으나 현재 농월정(弄月亭)과 거연정(居然亭), 군자정(君子亭), 동호정(東湖亭)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