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 김대중 이희호 사저 대문 앞에서(왼쪽부터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기자, 진천규 통일 TV 대표.)
김정호(민화협)
두 제자의 초대
지난 연말 두 제자가 신년 하례 겸 오찬이나 나누자고 연락이 왔다. 한 제자는 1972년 3월 1일 서울 오산중학교 1학년 신입생 입학식장에서 만나 3년간 국어를 가르쳤던 진천규 통일 TV 대표이다. 또 다른 한 제자는 1979년 3월 2일 이대부고 입학식장에서 만난 이후 2년간 역시 국어를 가르쳤던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다.
오랜만에 아주 기쁜 마음으로 오버코트에 중절모를 꺼내 쓰고 지난 6일 원주역에서 오전 9시 34분 청량리행 중앙선 열차를 탔다. 서울로 가는 1시간 남짓 동안 나는 그들과의 이런저런 추억을 되새김질했다.
1971년 6월 30일, 군에서 전역한 나는 곧장 경기도 여주의 한 중학교에서 그해 학년말까지 근무한 뒤 서울로 전근케 됐다.
그때 서울 마포구의 한 여자고등학교와 용산구의 오산(五山)중학교, 두 학교에서 나를 불렀다. 그때 나는 오산중학교로 발길을 돌렸다. 그 까닭은 내가 오산학교 출신 김소월 시인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중고교 시절에는 그의 시를 거의 다 외울 정도로 심취했다. 또 하나 이유는 오산학교 교실마다 붙어 있었던 독립운동가 남강 이승훈 선생의 사진과 유훈 때문이었다.
"겨레의 광복을 위하여 힘쓰라. 내 유해는 땅에 묻지 말고, 생리표본을 만들어 학생들을 위하여 쓰게 하라. 그리고 서로 돕고 낙심하지 말고 쉼 없이 전진하라."
나는 그 말씀에 시쳇말로 '뿅'갔다. 우리나라에 저런 위대한 선각자가 계셨다니...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그해 나는 신출내기 교사로 중학교 1학년 12반 담임을 맡게 됐다. 그 학교는 별나게도 삼일절 날에 개학식과 입학식을 치렀다. 이는 교조 남강 이승훈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한 후학들의 눈물겨운 정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