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거미술관 박대성작 <한라산 >400*500cm
추미전(전시 촬영)
4미터의 작품 '한라산' 앞에서는 떨어지는 폭포수의 세찬 물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했다. 분명히 화면 속 색깔은 검은색과 흰색뿐인데, 제주 특유의 화산석의 질감과 폭포수 아래 찰랑거리는 물의 차가움까지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 신기했다.
작품을 보면 볼수록 화백에 대한 궁금증은 더해갔다. 다행히 자료실에 가니 그동안 박대성 화백에 관해 방송된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오디오 시스템이 마련돼 있어 아예 죽치고 앉아 모든 자료들을 살폈다. 박대성 화백은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몰랐던 것뿐이고 현재 한국 화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화백 중 한 분이었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때 뒷배경으로 등장한 그림이 박대성 화백의 '장백폭포'이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박대성 화백의 왼쪽 팔이 의수라는 것이다. 그가 왼쪽 팔을 잃은 건 다섯살 때였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949년의 어느 밤, 전후 이념갈등에 눈 먼 어른들이 잠자던 그의 부모를 살해하고 그의 작은 손에 낫을 휘둘렀다고 한다(2008년 <신동아>에 실린 '불국사 화가 박대성' 참고). 그러니까 이 많은 작품들을, 그것도 이천 호, 삼천 호의 대작들을 70년 동안 오직 오른손 만으로 그렸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학력은 중졸이 전부이고 체계적인 미술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이 모든 작품 세계를 독학으로 이루어 냈다.
내가 가졌던 흰 눈에 대한 궁금증도 풀렸다. 덧칠을 한 것이 아니라 아예 화선지 그 자체를 살린 것인데, 외국의 화가들이 오면 '그리지 않음으로 그림이 되는' 동양화의 '여백의 미'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발이 푹푹 빠질 것 같은 흰 눈도, 힘차게 흘러내리는 물줄기도 아무 것도 그리지 않은 여백 그 자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자연경관을 소재로 그린 '실경 산수화'의 맥을 잇는 박대성은 조선시대 실경 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맥을 잇는 화가로도 꼽힌다고 한다. 실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겸재 정선 그림과 나란히 박대성의 작품이 전시되기도 했다.
박대성 화백이 직접 말하는 자신의 인생과 작품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고 다시 지하 전시실로 내려갔다. 혹시 내가 허투루 보고 지나친 작품은 없는지 다시 찬찬히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시 보자 감동은 더 크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