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치시장'
이명주
손님이 많으면 좋을 법도 한데 하루 온종일 시장을 지키는 상인 분들은 꼭 그렇지만도 않으신 듯했다. 어느 생선 가게 아주머니는 "따라가요, 따라가. 거 서 있으면 하루종일 못 갑니다" 하면서 한 발 떼기 쉽지 않은 상황에 어찌할 줄 모르는 방문객들에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나는 한숨 돌리려 잠시 옆길로 빠졌다가 그래도 모처럼 그 북적임과 생생함이 좋아서 다시 시장 골목으로 섞여들었다.
'자갈치 시장' 끝에는 몇 년 전 현대식으로 재정비한 '회센터' 빌딩과 바다와 배들을 볼 수 있는 항구 광장 그리고 여객선 터미널 선착장이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광안리 해수욕장'과는 많이 다른 느낌. 해수욕장이 놀기 위한 바다라면 이곳 바다는 치열한 삶터. 당연히 장소의 기운도 다르다. 항구 광장에 서서 바다와 하늘, 늙은 가수의 열창을 잠시 감상하다 바로 길 건너 '부산 국제 영화제' 거리로.
참 볼거리 먹을거리 많은 동네다. '부산 국제 영화제' 거리에는 극장과 복합 매장들, 그리고 보다 다양한 간식거리를 파는 노점들이 파라솔 아래 줄줄이 서있다. 앞서 시장에서 푸짐한 생선구이 한상을 먹을까 여기에서 이것저것 입맛 당기는 대로 사먹을까 고민하다 후자를 선택. 고소하고 달달한 씨앗호떡부터 오동통 쫄깃쫄깃 담백한 소라꼬치, 그리고 모짜렐라 치즈가 가득 든 어묵으로 행복한 점심 식사 완료.
나온 김에 겨울 외투를 하나 사려고 대형 매장에 갔다. 마침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색색깔의 후두 점퍼 1+1 행사 중. 빨강, 노랑, 초록, 연두, 파랑, 연파랑, 보라, 연보라, 남색, 갈색, 검정색, 하얀색 정말 색깔별로 다 있었다. 긴 고민 끝에 빨강과 노랑을 택했는데 노랑색이 원하는 사이즈가 없었다. 2층까지 가서 검정으로 바꿨는데 이번엔 1+1 해당 제품이 아니란다. 슬슬 한계가 느껴졌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가고 싶진 않아서 인내심을 발휘해 또다른 가게로 갔다. 결국 전혀 다른 모양의 가격도 제법 비싸서 3개월 할부 카드 결제를 해서 정장에도 어울릴 만한 외투를 샀다. 이로써 겨우내 검정색 단벌 외투 신세에서 탈출. 후회 없는 쇼핑을 위해서도 분별력, 자제력, 인내력, 통찰력 등 많은 덕목이 요구되니 어려운 게 당연한 것도 같다.
어느새 저녁 기운이 감도는 오후. 다리도 아프고 이제 그만 집으로 가고 싶다. 예전에 살던 집도 둘러보고 마을버스를 타고 경치 좋은 산복도로를 올라 '민주공원'까지도 가보고 싶지만 다음으로. 시내버스 여행의 장점 중 하나는 언제 끝내더라도 아쉬움이 적다는. 마음만 먹으면 쉽사리 다시 올 수 있으니까. 어둠이 내리니 아직 거리 곳곳에 남아 있는 크리스마스 장식들에 등이 켜졌다.
버스를 타러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50대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문재인 아웃 독재 타도'란 글귀가 적힌 커다란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진짜 독재가 뭔지 모르나 보지." 나도 모르게 소리내서 말을 해버렸다. 말을 해서 통할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말을 해버리는, 이런 것도 꼰대 기질 같아서 스스로 움찔했다. 올 때도 똑같이 41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민락동'까지. 편히 와서 내 집까지도 5분만 걸으면 되니 이것도 참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