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暄?兩先生杖?之所 坪村崔公講磨之所’(훤두양선생장구지소 평촌최공강마지소) 두 거유의 흔적을 새겼다.
민영인
유학의 도를 전하는 곳이라 하여 도리(道里), 대학동리(大學洞里)의 원래 지명은 홍강포(鴻江浦)였으나 두 거유(巨儒)가 이곳에서 강학을 한 이후 대학동으로 바뀌었으며, 또한 기러기 포구에 자라처럼 우뚝 솟았다는 의미의 오대산(鰲戴山)의 이름도 오도산(吾道山)이라 고쳤다고 한다.
수포대(水瀑臺)의 정확한 지명 유래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수포대(水泡臺)라고도 한다. 수포대는 가조팔경 중 제6경으로 지산천이 흘러내리며 만든 화강암의 너럭바위다. 아래에서 보면 오른쪽에 '水瀑臺', 왼쪽에는 두 줄로 '暄蠹兩先生杖屨之所 坪村崔公講磨之所'(훤두양선생장구지소 평촌최공강마지소)라는 붉은 글씨가 석각되어 있다.
이 두 분의 우정은 워낙 유명하였으며, 연산군 초 당시 한훤당은 처가인 합천 야로에 머물고 있었는데, 함양 개평에 있던 일두와 전갈을 주고받다 합천까지 왔으니 서로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이야 고속도로가 있어 가까운 곳이지만 당시 산길을 넘어 다니기에는 분명 만만찮은 여정이었을 것이다. 마침 중간 지점인 이곳에 한훤당의 동서가 되는 평촌(坪村) 최숙량(崔淑梁)이 살고 있어 이곳에서 두 지기(知己)는 만났다. 그리고는 무려 5년간이나 강학하며 이 지역 유림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빼어난 자연풍광 속에서 향촌의 유생들을 너럭바위에 앉혀두고 한훤당은 자신의 전공인 소학을 강(講)하고, 일두는 지리산에서 깨우친 도학을 설(說)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 지역 출신 문인인 이와(螭窩) 이일협(李逸協, 1750-1808)이 지은 "시냇물은 졸졸 흐르고 돌들은 잘고 잘아, 물과 돌이 어울려 흐르니 그 소리가 한훤당의 돈독함과 일두의 순수함을 모아 이룬 구슬같구나"라는 글이 나의 상상을 잘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