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혁 의사 부산경찰서 투탄 안내판 제막식박재혁 의사 투탄 장소 안내판 제막을 거행하고 있는 유족 김경은과 개성고 동창회, 부산보훈처, 부산중구청 관계자들
이병길
1920년 9월 14일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원 박재혁(1895~1921)의 투탄 장소 안내판 제막식이 2일 오후 2시 옛 부산경찰서 자리에서 열렸다.
투탄 100주년을 맞이하여 부산 개성고 총동창회가 중심이 되어 부산중구청과 보훈처가 함께 행사하였다. 이날 행사에는 박재혁 의사의 이손녀 김경은씨와 박 의사 친구 최천택의 아들 최철씨 등 관계자 20여 명이 참석하였다.
박재혁 의사는 3대 독자로 태어나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다. 부산공립상업학교 재학 때에는 '동국역사 배포사건', 비밀결사 단체인 '구세단' 활동으로 일경에 고초를 겪었다. 졸업 후에는 중국 상해와 싱가포르, 부산을 오가며 무역상으로 독립운동을 모색하였다. 1920년 의열단장 김원봉의 권유로 의열단에 가입하고 그로부터 거사 자금과 폭탄을 받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9월 14일 일제 통치 심장부의 하나인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서장 등을 부상 입히고 건물 일부를 파괴하였다. 박 의사의 의거는 의열단의 최초의 성공적인 거사로 평가받고 있다. 박재혁 의사는 사형 선고를 받고 감옥에서 단식하다가 1921년 5월 11일 순국하였다.
박재혁의 친구였던 독립유공자 오택은 박재혁 의거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박재혁의 행사는 누구보다 가장 깨끗하였다. 첫째 목숨을 걸고 적전(敵前)에 접근하여 결사(決死) 실천(實踐)한 것. 둘째 당초부터 공범자가 없도록 처리하고 단독 결행한 점. 셋째 적 앞에서 사형을 거절하고 아사(餓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