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현, The Precious Message(162x130.3cm, Oil on canvas), 2013
김시현
보자기가 물건을 이동하는 수단으로서 장점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사례가 있다. 바로 판사들이다. 보자기는 골무와 함께 판사의 가까운 친구이자 동반자다. 두꺼운 서류를 가장 많이 들춰보고, 또 가지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가방보다 보자기가 훨씬 편리한 게 아닐까. 수천 장이 넘기 일쑤인 서류 뭉치를 담고 다닐 수 있는 가방은 휴대용 캐리어가 아니고서는 드물다.
가방은 물건을 '넣는' 물건이고 보자기는 '싸는' 물건이다. 넣는 것과 싸는 것은 둘 다 물건을 보관하고 이동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같은 개념으로 보이지만 가방은 '딱딱한 것'이어야 하고 보자기는 부드러운 것이어야 한다.
짚신과 고무신도 보자기의 포용을 닮았다. 서양의 구두는 오른쪽과 왼쪽을 엄격히 구분해서 서로 바꿔 신을 수 없지만, 짚신과 고무신은 오른쪽 왼쪽 발을 모두 받아들인다. 보자기가 네모난 것이든, 둥근 것이든, 딱딱한 것이든, 부드러운 것이든 상관없이 품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옛 어머니들은 큰 포대기를 접어서 아이들 업고 다녔다. 반면 서양의 어머니들은 요람 안에 넣어서 아이를 재웠다. 포대기는 아이와 엄마를 연결해주고 한 몸이 되게 하지만 요람은 둘을 분리한다. 요람은 엄마가 편하거나 불편한 극단의 생활을 하도록 한다. 요람에 재우면 자유롭게 다른 일을 할 수 있지만 아이가 깨면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반면 '어부바' 문화는 아이를 돌보면서도 다른 일을 불편하지 않게 할 수 있다.
아이를 업는 것과 요람에 따로 두는 것은 과학적인 자료에 의해서 차별된다. 마이애미 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엄마에게서 분리된 아기는 30분 이내에 단백질 효소가 낮아진다. 우리의 '어부바' 문화는 정서적인 측면과 아울러 생화학적인 장점을 갖는다.
딱딱한 가방(서양)과 부드러운 보자기(한국)의 대비는 의복에도 이어진다. 서양 양복은 마치 중세 사람의 갑옷과도 같아서 입고 나면 반드시 옷걸이에 걸어두어야 제 모양을 유지한다. 반면 한복은 보자기의 부드러움을 닮았기 때문에 개켜두는 것이 더 좋다. 또 양복은 허리의 넓이와 길이가 정확하지 않으면 입기가 곤란하다. 허리가 36인치인 사람이 입던 바지를 허리가 30인치인 사람이 입을 수가 없다. 반면 한복 바지를 생각해보자. 보기에는 너무 펑퍼짐해서 불편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한복 바지는 허리둘레를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아예 20cm 정도 여유를 두고 재단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한복 바지는 허리둘레에 상관없이 편안하게 입는다. 본인의 허리둘레에 따라 적당히 접어서 입으면 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밥을 많이 먹었을 때와 그렇지 않은 때는 허리둘레가 달라진다. 급격하게 체중의 변화를 겪은 사람이라면 아예 옷 전체를 다시 수선하거나 새로 사야 한다.
양복은 사람이 자신의 허리둘레에 맞는 옷을 찾거나 맞추어 입어야 하지만 한복 바지는 웬만한 허리둘레는 모두 수용한다. 보자기처럼 다양한 크기의 사람을 감싸 안는다.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앞뒤를 바꿔 입어도 무난하게 입을 수 있는 것이 한복 바지다. 상의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