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황토현 전적지
허영진
혁명군 지휘부는 황토현의 전략적 위치를 훤히 꿰고 있어서 이곳을 첫 접전지로 잡았다. 그리고 관군을 황토현으로 유도하여 싸움판을 벌였다. 다시 기꾸지의 기록이다.
황토현의 서남쪽은 두승산 줄기에 이어진 깊은 계곡 지대로 계곡을 사이에 두고 시목리가 있어서 양군의 진영은 부르면 대답할 수 있는 대치 상황이었다. 관군은 판단을 잘못하여 그날 밤 완전히 무장을 풀어버려 마치 개선한 밤의 잔치와도 같이 잠과 환호 그리고 술자리를 베푸는 등 편하게 지냈다.
때는 바로 3경(更)이 지나고, 3월 7일 잔월(殘月)은 이미 사자봉의 서쪽에 지며 밤이 깊어 가는데도 경비를 서는 군사는 한 명도 없었다. 동학군은 두 부대로 나누어 앞의 부대는 서남쪽 정면으로, 뒷 부대는 동북쪽의 뒷 진영을 기습하기로 하였다. 모든 군사는 창과 검을 가지고 밭두둑에 엎드려 전진하였고, 지름길로 천천히 소리를 죽이고 진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