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11월 말목장터 봉기를 주도한 21명의 참여자들이 각 리(里)의 집강(執綱)들에게 돌린 사발통문.1893년 11월 말목장터 봉기를 주도한 21명의 참여자들이 각 리(里)의 집강(執綱)들에게 돌린 사발통문.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동학농민혁명 과정에서 돋보이는 '사건'의 하나는 사발통문(沙鉢通文)이다.
이들은 봉기를 준비하면서 주동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사발 모양으로 둥글게 이름을 적은 문서를 만들었다.
그냥 기록해 두는 문서가 아니라 비밀리에 돌려보기위해 마련한 것이다. 사발을 종이에 엎어둔 후 사발 둘레를 따라 한 사람씩 세로 쓰기로 둥글게 이름을 적은 때문에 누가 시작점인지, 주도자인지 알기 어려운 특성을 갖기 때문에 동학혁명의 논의 초창기에 등장하였다.
이 무렵 고부 중심의 농민지도자들은 고부를 중심으로 새로운 변란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곧 도인들이 사발통문(沙鉢通文)을 돌리고 봉기를 계획한 것이다.
이 통문에 따르면, '계사 11월 ○일' (1893년 11월)이 앞에 나오고 이어 서명자의 명단이 나온다. 이어 글을 바꾸어 각리이집장좌하(各里里執綱座下)라 쓰고 그 아래 다음과 같은 글이 이어지고 있다.
우와 같이 격문을 사방에 날래 전하니 여론이 비등하였다. 매일 난망(亂亡)을 구가하던 민중들은 곳곳에 모여서 말하되, "났네 났어, 난리가 났어", "에이 참 잘되얐지. 그냥 이대로 지내서야 백성이 한 사람이 남아 있겠나" 하며 기일이 오기를 기다리더라.
이 때에 동학도인들은 선후책을 토의 결정하기 위하여 고부 서부면 죽산리 송두호(宋斗浩) 집에 도소를 정하고 매일 운집하여 차서(次序)를 결정하니 그 결의된 내용은 좌와 같다.
①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을 효수할 사.
②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할 사.
③ 군수에게 아부하여 인민을 갈취한 탐리를 쳐 징계할 사.
④ 전주영을 함락하고 서울로 곧바로 올라갈 사.
우와 같이 결의가 되고 따라서 군략에 능하고 모든 일에 민활한 영도자가 될 장(將)……(이하 판독불능) (주석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