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에 와서 빈둥거리며 3년 살다 보니 적응도 많이 했고, 무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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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남편의 월급만으로 매달 집 월세를 내고, 공과금을 내고, 아이를 수영이나 테니스 같은 방과 후 활동에 참석 시키면 생활비는 언제나 빠듯했다. 한국과 비교하면 남편의 월급은 높은 편이지만, 한국에서나 이곳에서나 알뜰살뜰하게 꼼꼼히 계산하며 생활해야는 것은 마찬가지다. 꼭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었지만 남편의 월급으로는 어림도 없어서 포기한 상태였다.
"무료 영어 공부도 할 겸, 다양한 배경을 지닌 친구도 사귈 겸 자격증 과정을 시작했어."
매사에 행동보다 말을 앞세우는 성격 탓에 과정 시작도 전에 주변인들이 다 알려버렸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내 인생 철학이다. 남들은 일이 어느 정도 되고 나서 주변에 알린다 던데, 나는 정반대다. 미리 알려 놓아야 끝까지 공부할 수 있다.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수많은 유혹보다 알고 있는 사람이 더 많아야 끝을 볼 수 있다. 그들에게 내가 중간에 포기한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과정을 완주하는 게 훨씬 수월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전략이다.
멜버른 보조교사 자격증에 도전하다
주 2회, 아침 9시 30분에 시작해서 오후 3시에 수업이 끝난다. 첫 주 이틀 수업을 마치고는 기가 팍 죽어 버렸고, 온 몸은 절여 놓은 배추처럼 늘어졌다. 호주, 우크라이나,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싱가포르, 그리스, 스리랑카… 나와 함께 공부하는 수강생들은 다양한 배경을 지녔다. 대다수는 초등 전 또는 젊어서 이민을 와서 이곳에서 공부를 한 경험이 있거나 현장에서 일을 하다 직업을 변경해 보고 싶어서 등록을 한 경우가 많았다.
하루 종일 영어로만 수업을 하고 수강생들끼리도 영어로만 대화를 하다 보니 뇌는 과부하가 걸렸고 혀는 마비가 올 지경이었다. 인간 뇌의 신비를 터득하게 됐다. 전기를 많이 사용하면 퓨즈가 자동으로 나가 듯, 뇌에도 '자동차단' 장치가 장착되어 있나 보다. 뇌에 과부하가 걸리면 알아서 스위치를 내렸다 올렸다 했다.
그동안 내가 경험한 멜버른의 생활이 모두 '수박 겉핥기'처럼 느껴졌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영어로 대화를 하며 일을 해내는 남편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낯선 땅에서 먹고 살고, 정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이민자들의 삶에 경외감이 들었다.
"내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웃을 때면 너무 속상하고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 들어. 대화에 끼기 어려워서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일하다 집에 오면 입에서 곰팡이가 서는 기분이야. 나도 한국말로는 농담 잘 하는데 말이지."
본인을 제외하면 모두가 백인 호주 직원이라며 고충을 토해내던 지인의 말들이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예전엔 그녀가 잘 이해되지 않았었다. 호주 인이 운영하는 회사는 보통 복지나 급여가 훨씬 좋은데 일년 후엔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그녀의 심정을 이제는 오롯이 이해하게 됐다.
'고통은 고통을 알아 본다'라는 말을 실감하다